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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묻다] 믿음의 종교, 이제 와서 행함을 말하는가

발행일 발행호수 2667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특히 기독교는 바울의 믿음 신학,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 위에 세워졌으며, 오늘날까지도 믿음을 구원의 핵심 조건으로 삼고 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행함을 강조하는 성경 ‘야고보서’를 가리켜 “지푸라기 서신(An epistle of straw)” 이라 불렀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행함’보다 ‘믿음’을 우위에 두어온 역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2025년 10월, 교황 레오 14세는 자신의 첫 번째 권고문에서 야고보서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누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그 자체로 죽은 것입니다.”

교황의 일침은 신자들의 나태를 질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기독교가 수천 년간 가르쳐온 기존의 구원관과 모순되는 발언이다. 행함이 구원에 그토록 중요하다면 바울은 왜 행위보다 믿음을 앞세웠는가. 그리고 기독교는 왜 2천 년 가까이 믿음을 구원의 핵심으로 가르쳐왔는가. 질문은 결국 하나의 근본적인 의문으로 귀결된다. 초월적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 종교가 그 증명의 빈자리를 ‘믿음’으로 메워 온 것은 아니었는가.

믿음은 증명되지 않은 대상을 유지하는 데 매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별도의 검증 없이도 사람들의 인식에 실제처럼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 역시 예수의 부활을 모든 사람이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명의 문제라기보다 믿음의 문제로 전환했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들에게 초월적 실재는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으로 고착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신비와 경외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졌던 현상들이 이제는 역사적 검증과 과학적 입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믿으라’는 말에 만족하지 않고 증거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문제는 개별적 기적 하나의 진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 부활의 증거라던 토리노 수의부터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주장해 온 초월적 실재의 허구성이 드러나면서, 믿음을 요구해 온 종교의 권위와 정당성 자체가 의심받게 되었다. 믿음의 대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믿음을 동력으로 존립해 온 종교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가 ‘행함’을 꺼내 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믿음’이 종교적 대상과 교리에 대한 신뢰를 요구하는 개념이라면, ‘행함’은 신자 개개인의 노력과 실천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구원의 문제를 믿음에서 행함으로 옮기는 순간, 그 책임의 무게 역시 종교에서 개인에게로 이동하게 된다.

영적으로 메마르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가 초월적 존재의 부재나 교단의 부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충분히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결국 종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할 초월적 권능과 그 부재로 인한 실패의 책임을 신도들에게 떠넘겨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는 교묘한 책임 전가로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행함을 강조한다고 해서 종교가 직면한 본질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구원으로 향하는 행위가 되려면, 구원으로 이끌어줄 초월적 존재의 입증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실재를 보여주지 못해 ‘믿음’이라는 언어로 연명해 온 종교가 무슨 수로 행함의 동력을 제공한단 말인가. 더구나 수천 년간 믿음에 잠식되어 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들의 마비된 실천 감각이 하루아침에 되살아날 리도 만무하다.

결국 종교가 뒤늦게 꺼내든 ‘행함’은 쇄신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줄 수 있는 구원이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음을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서 ‘행함’을 빼앗고 ‘믿음’만을 강요했던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한, 종교는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과 실천 의지를 마비시킴으로써 구원의 가능성마저 철저히 가로막아 온 세력이라는 결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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