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38> 홀로코스트의 뿌리를 찾아서-②
세계 종교 탐구 <38>▣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다.
반유대주의적 유대인 학살 사건 중 가장 피해 규모가 큰 것은 독일제국에서 일어난 홀로코스트다. 홀로코스트는 체계적이고 치밀한 계획 아래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유대인들을 완전히 말살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광기와 잔인함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것은 분명히 히틀러와 나치독일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한 것은 기독교라고 본다. 기독교의 반유대주의가 대학살을 가능케 한 확실한 기반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유대인을 악마로 간주하는 사상에 감염되게 된 데에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적 기독교 전통이 크게 작용했다.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자, 불경스런 배신자, 의식 살해범, 기독교에 반항하는 위험한 음모자, 또는 도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부류라는 이미지가 이미 확고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치는 그런 이미지를 스스로 고안해 낼 필요가 없었다. 거의 2천 년 동안 기독교 세계는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비인간화시켜 왔고, 그 비인간화의 극치인 대학살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 되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를 죽인 민족’이라는 생각은 초대교회 때부터 유럽 기독교인들의 ’무의식‘ 속에 살아남아 홀로코스트 기간 중 극명하게 나타났다.
히틀러는 그의 자서전『나의 투쟁』에서 “나는 내가 전능하신 창조주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주님의 일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자료7> 다음의 일화는 그의 믿음을 뒷받침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극에 달했을 때, 폴란드의 랍비 바이스만델은 로마 교황청에 ‘무고한 유대인, 특히 어린이들만이라도 구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나치 치하에서 학살된 600만 유대인 가운데 150만 명은 어린이였기에, 그의 간구는 절규에 가까운 호소였다. 그러나 교황청으로부터 그가 받은 답장은 매몰차다 못해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어린이의 피라는 것은 없다. 모든 유대인의 피는 죄악되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 죄(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때문에 당신들이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이다.’
가톨릭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켜 분파한 개신교도 유대인에 대한 입장은 가톨릭과 다르지 않았다. 히틀러가 그의 자서전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았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1543년『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하여』라는 책자를 출판했다.<자료8> 책에서 루터는 유대인을 향한 악의적인 독설을 퍼붓고, 심지어 유대인 박멸을 권하는 끔찍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이것을 알라. 사탄 다음으로 잔인하고 악독하고 폭력적인 우리의 원수는 유대인이다. 이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전염병과 같은 존재로서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에게 불행이 된다. 이들의 존재는 참으로 절망적이고 사악하고 악독스럽고 악마적이다. 그들은 단지 악마일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먼저 그들의 회당을 불태워야 한다… 두 번째로 그들의 집도 부수고 파괴해야 한다… 세 번째로 그들의 기도책과 탈무드를 압수해야 한다…네 번째로 그들의 랍비들이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가르칠 경우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악하고 게으른 자들을 우리 사회에서 쫓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을 없애버려야 한다… 만일 나의 제안이 합당치 않게 여겨지거든 이 상종 못 할 사탄 같은 짐스러운 존재인 유대인들을 없앨 수 있는 더 좋은 방안을 찾아보시오.”
유대인을 향한 루터의 독설은 히틀러에게 채택되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이스라엘 선교사인『유대인 바로보기』의 저자는 “유대인들이 저주하는 3대 인물은 예수,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게 한 교황, 종교개혁 때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을 이용하려 한 루터”라며,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히틀러는 끼지도 못한다”고 얘기했다. 또한 “1만 정도의 히틀러 친위대가 600만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었던 것은 구·신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홀로코스트를 ‘기독교 안의 반유대주의로 인한 열매’라고 표현했다.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일이 가능했던 것은 한가지 해석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대의 교회가 반인륜적인 이러한 학살을 방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들어갈 때, 그들은 독일의 제복에 걸려있는 나치의 구부러진 마크를 십자가로 보았고,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면서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의 최후에 대하여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2천 년 동안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자라온 반유대주의의 괴물이 온전한 이성을 가진 인간의 생각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반유대주의 연구의 최고 권위자 로버트 S. 위스트리치는 홀로코스트는 보편적인 교훈을 남겼다고 했다. 그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문화적,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으로 제아무리 진보했다고 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그 사회 전체가 범죄 집단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또한 홀로코스트는 권력을 윤리적 절제 없이 맹목적으로 숭배할 경우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또한 명심해야 할 바는, 각 개인은 스스로 양심과 운명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명령에 복종했다는 것이 범죄행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기독교적 반유대주의 연구와 반성을 다룬 한 논문에서는 “교회는 유대인들의 대량학살에 대한 책임을 히틀러와 나치 정부에게 돌리기에만 급급했고, 그것이 기독교 역사 속에서 내재되었던 신학적인 증오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2024년,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프란치스코는 순교자들을 다룬 새 책에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미친 이데올로기’의 손에 순교를 당한다.”며 자신들이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고 얘기하는 내용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한 이스라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무서운 증오의 종교다. 모든 역사는 이 종교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파산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는 경험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창구요, 이것이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역사가 증명해 주는 진실을 토대로 홀로코스트의 뿌리와 원인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1>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방지’ 명령. 75년 만에 ‘피해국’에서 ‘가해국’으로.
작년 10월 7일 개전한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장기화되며 인도적 피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국제인도법에 따르면 전쟁 중에도 의료진과 병원은 보호받아야 하며,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이들은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전쟁 포로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며, 민간인은 보호되어야 한다. 민간인 보호 차원에서 전력 및 상하수도와 같은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도 금한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즉시 가자지구에 물과 전기, 식량 등 일체 생존 인프라를 즉각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10월 13일 기자회견에서 “가자 주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민간인들이 인지하지도, 관여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얘기했고, 이에 언론들은 “가자지구에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민간인들이 직면한 인도적 피해 문제는 전쟁 내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며,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삼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반박했다.
가자지구 민간인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국제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을 “집단 처벌”하는 방식으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고, 작년 12월 2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지난달 26일,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방지’ 명령을 내렸다. 아직은 일종의 가처분 명령으로,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 협약(CPPCG)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다음날인 27일, TV 연설을 통해 “ICJ의 결정은 세계의 많은 사람이 홀로코스트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하마스가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들을 상대로 최악의 잔학 행위를 저질렀고, 하마스로부터 자국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 주장했다.
ICJ의 이번 명령이 실제 집행되기는 쉽지 않지만, 기념비적 명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든 집단학살 방지 조약의 위반자로 이스라엘이 재판 받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궤멸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7일 예루살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완전한 승리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살아남는다면 다음 학살까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얘기했다.
나치는 유대인 대량학살을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라 칭한 바 있다. 이들이 홀로코스트로부터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참고자료2> ‘집단학살 방지 협약’이란?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은 약칭 ‘제노사이드 협약(Genocide Convention)’으로도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자행된 잔혹 행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협약으로, 1948년 국제연합(UN) 총회에서 결의안이 채택, 51년에 발효되었다.
‘제노사이드’란 민족, 국적, 종교, 인종 등을 이유로 한 집단을 살육하거나 격리, 강제 교육 등의 방식으로 말살하는 행위다. 협약에 따르면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는 일, 중대한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일,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일, 집단 내 출생을 막는 일,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동하는 일” 등이 해당된다.
이상의 집단학살을 행한 자는 전시·평시를 불문하고, 또한 통치자·공무원·사인(私人)의 구별 없이 처벌된다. 또한 이를 위한 공동모의에 참가한 자·교사자·공범자도 함께 처벌된다. 현재 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모두 153개국으로, 재판은 국가 간 분쟁을 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창설된 유엔 최고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