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르완다 집단학살, 벨기에 가톨릭 사제와 대량학살의 신학<2>
A Belgian Catholic priest and the theology of genocide다음은 르완다 언론 뉴타임즈에 게재된 톰 은다히로의 칼럼이다.
1994년 7월 26일, 르완다 애국 전선(RPF)이 투치족에 대한 대량학살을 종식시키고 민족 통일 정부를 수립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 필리프 드 도를로도(Philippe de Dorlodot)는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썼다: “르완다 지옥에 대한 몇 가지 진실(Quelques vérités sur l’enfer rwandais)”.
도를로도는 사제로서의 권위를 무기 삼아 인도주의적 우려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도덕의 전도(顚倒), 정치적 기만, 그리고 집단학살 부인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글을 만들어냈다.
의도적인 모호함, 선택적 분노, 그리고 대량학살 가해자를 위해 얄팍하게 감춘 정당화를 통해, 그는 대량학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100일도 안 되는 기간에 백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대량학살의 주범이자 수혜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본 기사는 불처벌(不處罰)의 신학을 여전히 용인하는 세속 기관과 교회 기관 모두에 책임을 묻도록 촉구한다. 만약 위선이 성사(聖事,가톨릭의 주요 예식)라면, 도를로도는 가장 독실한 집전자일 것이다.
▌ 사상 소개
도를로도 신부의 글은 과장된 감정 연출로 시작된다. “7월 14일, 귀청이 터질 듯한 침묵 속에 후투족이 고마로 몰려든다. 한 민족이 죽음을 피해 조용히 걸어간다.” 이러한 시적 과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도덕적으로 동등하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용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를로도는 서문 어디에도 이 난민들이 왜 도망쳤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들이 도망친 이유는 막연히 ‘죽음’ 때문이 아니라 ‘정의’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량학살을 자행하는 적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대량학살을 자행했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친 것이다.
그러나 도를로도 신부는 곧바로 감정 조작에 나선다. 그는 “르완다에서 학살당하는 것보다 자이르(現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콜레라로 죽는 게 낫다.”며 가해 후투족의 피난을 고귀한 고통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RPF가 진압에 성공하며 학살을 종식시킨 이후, 르완다에서 더 이상 학살당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는 공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흐리는 행위다.
▌ 후투 권력의 대필 작가가 된 사제
본문 초반부에서 도를로도 신부는 붕괴된 집단학살 정권의 선전 문구를 놀랍도록 닮은 정치적 불만을 표출한다. 그는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들은 이 배신을 깊은 불의로 여긴다.”라며 투치족의 집권이 후투족을 배신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벨기에 신부는 대량학살자들의 피를 씻어내기 위해 언어를 교묘하게 다루는 데 매우 능숙해 보인다.
익명적이고 검증 불가능한 출처를 사용함으로써, 도를로도 신부는 고통의 기록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대변인이 된다. 그의 서술에서 투치족에 대한 집단학살은 더 이상 뚜렷한 도덕적 무게를 갖지 않는다. 집단학살의 가해자는 피해자로, 해방자는 침략자로 묘사된다.
도를로도 신부의 언어 표현 전략에서 가장 교활한 함정 중 하나는 ‘국민’, ‘난민’, ‘피해자’와 같은 단어를 무기화하는 것이다. 그는 르완다에서 도망치는 난민을 지칭할 때 ‘후투족’이라는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들의 정체성을 단순히 ‘국민’ 또는 ‘주민’으로로 보편화하여 도덕적 중립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투치족’이라는 단어는 항상 권력, 지배, 또는 조종을 암시하는 맥락에서 사용된다.
이러한 언어적 교묘함은 투치족을 피해자로서, 후투족을 가해자로서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다. 도를로도 신부는 가해자를 ‘국민’, ‘난민’같은 일반적인 용어로 칭함으로써 책임을 없애버리고, 가해자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을 면죄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이, 대량학살의 시대에서 언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대량학살은 무기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비인간화하고, 진실을 흐리며, 범죄를 미화하는 언어에도 의존한다.
▌ 빅토리아 호수의 피해자 시체를 모욕하다
아마도 이 문서 전체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은 도를로도가 ‘40만~50만 명’에 달하는 실종자들을 언급하며, 익사하여 빅토리아 호수로 휩쓸려간 사람들에 대해 추측한 부분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 후투족 난민들의 흔적은 전혀 없다. 혹시 빅토리아 호수에 떠밀려 온 수만 구의 시체가 아닐까?”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경멸이다. 그는 빅토리아 호수에 버려진 시신들이 대량학살의 희생자인 투치족의 시신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투치족 다수가 냐바롱고 강과 그 지류에 버려졌다.<자료6>
이 벨기에 신부는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살인자들이 조직적으로 강을 이용하여 희생자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처리했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떠다니는 시체들이 RPF에 의해 살해된 후투족이라고 암시했다.
이는 단순히 집단학살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인간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그는 집단학살의 역사를 다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미지를 선전용으로 재활용한 것이다.
<자료6> 빅토리아 호수에 떠내려 온 투치족 시신들
1994년 대량학살 당시 우간다 어부들이 빅토리아 호수에서 인양한 투치족 시신들. 심하게 부패한 이 시신들은 르완다에서 살해된 뒤 강을 따라 320km이상 이동해 온 것이었다. (출처: 울루다으 사전)
▌ 이중 대량학살 주장
도를로도는 자신의 핵심 주장을 이렇게 소개한다. “르완다에는 두 가지 집단학살이 있다. 하나는 특정 당국, 군대, 그리고 인테라함웨(후투족 무장 단체)에 의해 저질러졌고, 다른 하나는 RPF에 의해 저질러졌다.”
이러한 언어 전략은 매우 기만적이고 본질적으로 부패했다. 이 가톨릭 신부는 그들의 집단학살을 인정하긴 했지만, 상대도 같은 선상에 놓으려 한다. 첫 번째 집단학살은 ‘특정 당국’, ‘인테라함웨’라는 단서를 달아, 마치 일부 세력이 일으킨 주변적인 사건인 양 묘사한다.
그리고 마술사가 손을 바꾸듯, 그는 증거도 없이 RPF에 주의를 돌리며 이렇게 주장한다. “비움바 현에서 40만~50만 명의 후투족 난민들이 행방불명 되었다… 빅토리아 호수에 떠밀려 온 수만 구의 시체가 아닐까?”
여기서 도를로도는 진실이라는 허세조차 버린다. 비움바의 후투족 도망자들은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1992년 초에 이미 남쪽으로 이주했고, 그중 다수가 탄자니아나 고마에 정착했다. 빅토리아 호수에 시신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집단학살 부인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음모론과 터무니없이 일치한다.
장 폴 아카예수(Jean-Paul Akayesu) 사건에서 유엔 산하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가 내린 판결(ICTR-96-4)을 다시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이 판결은 이중 집단학살 주장을 명백히 기각하고, 집단학살이 “투치족만을 대상으로 자행되었다.”고 명시했다.
도를로도 신부가 RPF가 유사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신학적 역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서술 속에서 말살을 종식시킨 구원의 주체는 죄인으로, 말살의 주체인 후투 집단은 죄인이라 오해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 신부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법적인 언어는 아니더라도 도덕적인 언어를 교묘하게 바꿔 쓰는 데 달인이다. 그가 ‘제노사이드(대량학살)’와 ‘범죄’라는 용어 사이에서 어떻게 곡예를 부리는지 읽어보라.
도를로도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RPF에 의해 공포에 휩싸인 10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고마와 주변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것은 ‘제노사이드’다!”, “남서부 지역에서는 임시 정부와 라디오 밀레 콜린스가 주민들을 피난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범죄’다!”
도덕적 언어의 차이를 주목하라. 제노사이드와 단순 범죄는 그 도덕적 무게가 다르다.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는데도) 공포를 유발했다는 RPF의 행동은 ‘제노사이드’로 낙인 찍는다. 반면, 대학살을 자행한 후투 정부와 그 학살을 선동한 라디오 방송에 대해서는 단순히 ‘범죄’를 저질렀다고 묘사한다. 이는 어휘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도덕적 실패다.
가톨릭 도덕 신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의로운 전쟁 이론(Just War Theory)은 전쟁에 대한 정당성(jus ad bellum)과 전쟁 중의 정당성(jus in bello)을 강조한다. 전쟁의 이유나 과정에서 정당한 조건을 충족하면 의로운 전쟁이라는 것이다.
도를로도는 “후투족(85%)과 투치족(15%)의 각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협상된 정치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다수주의를 신학으로 계속 주장한다. 이 프레임은 섬뜩한 논리를 드러낸다. 도를로도는 인구 다수에게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제노사이드를 가능하게 만든 바로 그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한다. “85% 대 15%”의 이분법은 후투 파워(후투 우월주의) 프로파간다의 초석이었다. 이는 인종 배제, 재산 몰수,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량학살을 정당화하는 사이비 민주주의적 논리였다.
그런데 대학살 후인 1994년 7월에도 여전히 인구의 85%가 후투족이고 15%가 투치족이라는 그의 주장은 더욱 기괴한 사실을 드러낸다. 15%는 투치족이 한 명도 죽지 않은 수치다. 마치 백만 명의 사망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마치 그 학살이 가족과 마을, 그리고 지식인 전체를 몰살시키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무슨 계산으로 사망자를 세면서 여전히 그들이 살아 있다고 계산하는 것인가?
▌ 위험한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
도를로도 신부는 자신의 저서에서 “전쟁은 멀지 않은 미래에 재개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청사진이었다. 대량학살자들의 불만을 주류화함으로써 도를로도 신부는 미래 전쟁의 이념적 불씨를 지피는 데 일조한다. 그의 언어는 그가 미화했던 바로 그 난민 출신인 FDLR(르완다 해방 민주군: 해방 이후 후투 무장단체, 인테라함웨의 후속 조직)과 같은 단체의 수사학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사상은 현재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서 확산되고 있는 대량학살 선동 주장의 기반이 되었다.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은 콩고계 투치족이 ‘르완다 정부가 콩고 동부를 장악하려 한다’는 ‘르완다 음모론’에 가담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도를로도가 예측했던 전쟁은 그가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부카부에서의 고해성사’라는 풍자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본다. 잠시, 도를로도가 르완다 근처 콩고의 도시 부카부로 돌아와 고해 부스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자. 한 생존자가 들어온다.
생존자: 신부님, 용서해 주세요.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부모님, 형제자매, 이웃들까지, 모두 투치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를로도: 음… 단순한 정치적 오해가 아니었나요?
어쩌면 양쪽 모두 극단적이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당신이 상상한 것일지도 몰라요.
생존자: 저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체테로 난도질당하는 것을 봤습니다.
도를로도: 감정적으로 굴지 맙시다.
진짜 대량학살은 나중에 비움바에서
RPF에 의해 저질러졌을지도 모릅니다.
부조리는 스스로를 드러낸다. 도를로도는 허구적인 이중 집단학살을 주장하지만, 깊이 있는 학자들과 목격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거듭 반박해 왔다. 스콧 스트라우스는 저서『집단학살의 질서』에서 투치족 학살이 우발적인 혼란이 아니라 지역 관리, 군대, 그리고 지역 사회 지도자들이 참여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작전이었다고 강조한다.(Scott Straus,『The Order of Genocide: Race, Power, and War in Rwanda』, Cornell University Press, 2013., p.33.)
영국의 역사 연구가 린다 멜번은 학살 당시 후투 정권인 하브자리마나 정권과 선동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밀레 콜린스가 어떻게 대량학살의 구실을 만들었는지 보여주었다.
르완다에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을 지휘했던 로메오 달레르 장군은『악마와 악수하다』에서 르완다에서 목격한 것은 계획된 학살이었다고 썼다.(Romeo Dallaire,『Shake Hands With the Devil: The Failure of Humanity in Rwanda』, Vintage Canada, 2009., p.281.) 피로 물든 르완다의 언덕에는 모호함이 없다. 오직 도를로도 신부의 선택적 기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 바티칸과 침묵의 문제
더 큰 질문이 남아 있다. 바티칸은 인간의 존엄성, 화해, 그리고 진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저술을 남긴 도를로도 신부와 같은 사제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혔는가? 간단히 말해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회 당국으로부터 공개적인 질책이나 교정, 교리적 훈계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대량학살 부인 신학은 회개 없이 용서만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도 퍼지고 있다.
바티칸은 르완다 비극에서 교회 ‘일부’ 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과했지만, 결코 구체적인 인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어떤 교리가 위반되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며, 학살 조장자들을 본보기로 처벌하지도 않았다. 도를로도 신부는 여전히 비난받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그의 책이 역사 수정주의 진영에서 여전히 접근 가능하며 인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감독 소홀이 아니다. 처벌을 회피하는 공모다.
사제가 증오를 퍼뜨리고, 대량학살자들을 말로 옹호하며, 후투족의 권력 이념을 부활시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할 때, 교회는 단순히 치유를 촉구하고 넘어갈 수 없다. 그의 이름이 교회 증인 명단에서 삭제되고 불명예의 목록에 지정될 때까지, 바티칸은 기억을 더럽히는 데 침묵하는 동조자로 남을 것이다.
▌ 성직자들의 공모의 위험한 유산
도를로도 신부는 대량학살이 끝난 지 불과 며칠 만에 글을 썼는데, 애도자나 예언자가 아니라 증오 선동가로서였다. 그의 글은 끝없는 병폐의 징후였다. 그것은 서구 종교 사상에 깃든 식민지적 잔재가 아프리카를 부족주의, 위계, 그리고 만들어낸 균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었다.
도를로도는 잘못된 성직자가 아니라, 사제복과 십자가로 위장한 악의 조장자로 지목되어야 한다. 도를로도와 같은 사람들이 이념가가 아닌 인도주의자로 기억되는 한, 역사는 계속해서 처벌받지 않은 자들의 잉크와 묻히지 못한 죽은 자들의 눈물로 기록될 것이다.
바티칸은 사과할 뿐만 아니라 회개해야 한다. 기도할 뿐만 아니라 정화해야 한다. 죄를 밝히고, 죄인을 밝히고, 제단을 정화해야 한다.
교회가 대량학살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면,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더 이상 전 세계 희생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없다. 향 냄새는 맡을 수 있지만 피 냄새는 맡을 수 없는 교회, 즉 형식적인 예배만 챙기고 세상의 고통에 무감각한 교회는 더 이상 추종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저 홍수가 밀려오는 동안 방주 위의 의자나 재배치하고 있는 꼴일 뿐이다.
홀로코스트 이후, 세계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외치며 여러 국제 인권 협약을 제정했고, 세속법의 영역에서 인류는 진화했다. 세속법은 일부 범죄가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줄 정도로 극악무도하며,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성문화(成文化)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기독교 기관도 아우슈비츠의 화덕과 르완다의 마체테를 지켜보았다면, 그 교훈을 설교뿐만 아니라 교회법 자체에 영구히 새겨 넣었을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아쉽게도 그 희망은 시기상조였다. 홀로코스트 이후 75년이 넘었고 투치족 대량학살 이후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교회의 교회법은 이상하게도 대량학살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결혼하려는 성직자, 여성에게 서품을 주는 성직자, 전례상의 부적절한 행위, 그리고 물론 이단까지도 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집단학살은? 이상하게도 없다. 도대체 어떤 관행적 절차 때문에 신의 법이 반인륜적 범죄보다 전례 진행 방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의문이다.
이 심각한 침묵은 학문적 논의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적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르완다 사제 아타나세 세롬바의 사례가 있다. 그는 악마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며 민간인들이 피신해 있던 자신의 교구 성당을 불도저로 밀어, 2,000명이 넘는 투치족 집단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ICTR-2001-66)
그러나 범죄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는 그를 파문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사제다. 그는 미사를 계속 집전한다. 감옥에서도, 동료 학살자들을 위해, 모든 전례복을 갖춰 입고서 말이다. 마치 마태복음 5장 7절을 변형한 이런 강론이 떠오른다. “자비 없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고해 사제가 어쨌든 그들을 용서해 줄 것이기 때문이라.”
이러한 도덕적 마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정치적 죄보다 개인적 죄를 더 편안하게 다루는 교회의 관행적 무기력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신학적 맹점, 즉 집단학살이 너무나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라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그 반대를 보여준다. 교회가 모호한 태도를 유지할 때, 일부 성직자들은 박멸의 주체들에 대한 동정심을 오히려 매우 명확하게 드러낸다.
악행에 대한 제도적 조치가 없다면, 그것은 방종이 된다. 자체 법 체계에서 집단학살을 공식적으로 규탄할 수 없는 교회는 카인에게 살해당한 아벨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는 가운데 카인의 침묵을 축복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교회법이 집단학살을 육체뿐 아니라 영혼에도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도록 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볼 때, 집단학살은 신의 창조물에 반하는 것이다. 교회법이 속죄뿐 아니라 형벌의 여지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살인자를 축복하는 자가 빵과 포도주를 축복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도록 하자.(Let it affirm that those who bless the killers cannot also bless the bread and wine.)
***
톰 은다히로는 르완다의 사례를 통해 ‘대량학살의 신학’을 지적했다. 도를로도 신부는 성직자의 권위와 종교적 언어를 이용해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주장하는 듯했으나, 사실은 정의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서 서서 학살을 조장하고 정당화했으며, 그것이 바티칸의 입장과도 일치한다는 것이 은다히로의 설명이다.
현재도 가톨릭교회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 전쟁들을 언급하며 여전히 평화에 대해 논하고 있다. 지난 7월, 교황 레오 14세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와의 종전 회담을 중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지난 6월에는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을 두고 “전쟁은 문제를 더 키우고, 민족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피로 얼룩진 폭력이 아니라 평화의 실천으로 미래를 그려가길 바란다”며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학살 당시 르완다는 평화를 내세우는 이 종교를 이미 지배적으로 믿고 있었다. 르완다는 기독교 국가인 독일과 벨기에의 식민통치를 연이어 받았고, 인구의 90% 이상이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를 믿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일어난 것은 더없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집단학살이었다.
아프리카 통일 기구(OAU:Organization of African Unity)에서 발행한 보고서『르완다: 막을 수 있었던 집단학살(Rwanda: The Preventable Genocide)』은 “르완다 대학살을 ‘아프리카 내부 부족 간 분쟁’으로 축소하는 주장은, 가해자 측이 대량학살의 현실을 은폐하기 위해 교묘하게 고안한, 체계적이고 정교한 왜곡 전략이다.”라고 지적했다. 대학살이 가능했던 것은 내부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독교와 르완다 집단학살(Christianity and Genocide in Rwanda)』의 저자 티모시 롱맨은 “가톨릭과 개신교 교회가 모두 살인에 도덕적 허가를 부여함으로써 대량학살을 가능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고발했고, 그의 논문『교회 정치와 르완다의 대량 학살』에서는 “교회의 지배적 메시지는 이웃 사랑과 자비가 결코 아니었다. 교회는 민족적 증오와 살인을 직접 설교하지는 않았다 하겠지만, 르완다에서의 행보는 기독교가 세력 확장을 위해 마키아벨리적 조작(권력 유지를 위해 거짓말, 기만, 잔인함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적 술수나 조작)을 허용하고 인종차별을 받아들인다는 실증적 사례였고, 이는 집단학살을 지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배운 신학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최종적으로 결론지었다.
르완다 대학살이 일어난 지 31년이 지났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학살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르완다 대학살에 대한 교회의 책임에 대해 ‘교회 자체가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 개인의 잘못
(일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2017년, 전 교황 프란치스코는 르완다 대학살에 대해 교회의 책임을 사과하는 자리에서 “불행히도 그 시대의 실패가 교회 얼굴에 먹칠을 했다”며 자신들을 피해자의 위치로 둔갑시키는 도를로도의 화법을 재현했다.
가톨릭교회가 르완다를 너머 여전히 세계 곳곳에 평화를 외치며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톰 은다히로가 31년 전의 사건을 회고한 칼럼을 오늘날 게재한 것은, 여전히 가해자를 축복하고 있는 그들의 신학이 과연 진실된 평화의 복음일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경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