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플러스
20년을 달려온 요구르트 ‘런’

20년을 달려온 요구르트 ‘런’

70년 전통의 신앙촌식품에서 만든 런(Run), 천혜의 자연 환경과 신앙인의 양심으로 출시 이후 20년간 칼로리 낮춘 무지방 발효유로 국민 건강 지켜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 열풍이 불었다. 당시 사회 전반에 인스턴트식품과 고지방 식단의 열풍이 불며, 안전하면서도 균형 잡힌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의 요구 또한 커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앙촌식품은 발효유 분야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5년 1월 14일, 신앙촌식품은 건강을 생각한 발효유 ‘런(RUN)’을 세상에 내놓았다. 무지방으로 칼로리를 대폭 줄이고 가볍고 부드러운 맛을 강조해 기존 발효유와 차별화를 꾀했다. 이름 그대로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서 달려간다는 의미와 소비자의 건강한 내일을 함께 열어가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처음에는 생소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소비조합을 통해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점차 알려졌고, 20년이 지난 지금 런은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런의 20년은 신앙촌 제품의 경쟁력을 확인시켜 준 시간이었다. 2006년 HACCP 인증으로 위생과 안전성을 입증했고, 2014년에는 업계 최초로 ‘어린이기호식품 품질 인증’을 획득했다. 어린이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균형 잡힌 발효유라는 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올해 8월 28일에는 자동화 설비와 PLC·센서·HMI 시스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해썹(Smart HACCP)’ 인증을 획득, 제조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발효 기술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런의 차별성은 ‘살아 있는 유산균’에 있다. 런 한 병에는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와 장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5종의 프로바이오틱스가 1,000억 CFU이상 들어 있다. 여기에 칼로리 역시 개선해 처음 70kcal였던 것이 현재는 120ml에 54kcal로 낮아졌다. 무지방에 당은 줄이고, 영양 밸런스를 고려하여 칼슘과 비타민B₂를 풍부하게 담아 ‘부담 없이 매일 마시는 발효유’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포장 역시 변화를 거듭했다. 2005년 노란색과 파란색 그라데이션 로고로 출발해 원재료 개선과 표시 제도 변화에 맞춰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쳤다. 그러나 핵심은 언제나 ‘무지방, 칼로리·당 Down’이라는 일관된 메시지였다. 특히 업계 최초로 알루미늄 덮개를 없애고, 신앙촌에서 자체 생산한 친환경 투명 페트병을 사용해 100% 재활용할 수 있게 해 환경까지 고려했다. 런 공장은 매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견학 오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친다. 급식에서 보던 런을 실제 공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고, 교사와 학부모들도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라며 반가워한다. 그동안 런은 전국 가정과 학교 급식, 어린이집, 단체 행사에서 꾸준히 사랑받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안심하고 마시는 발효유”라는 신뢰를 쌓아왔다. 현재 런은 전국의 신앙촌상회와 대형마트, 온라인몰, 자사몰인 ‘SANC몰’ 등을 통해 공급되고 있으며, 20주년을 맞아 브랜드 캐릭터와 홍보 영상을 선보이며 젊은 소비자와의 접점도 넓혀가고 있다. 런이 2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앙촌의 철학이 있다. 1950년 후반, 서울의 한 양장점 주인은 “신앙촌 사람에게 옷을 맡기면 땀수를 속이지 않는다”며 정직과 양심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정신은 식품 생산에도 깃들어, 소사신앙촌 시절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던 때에도 카스텔라 한 개에 계란 한 개를 꼭 넣어 하루 10만 개를 생산해도 모자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정직과 신용, 최고의 품질로 반세기를 지켜온 신앙촌 기업 정신은 오늘날 런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신앙촌 식품이 곧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신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앞으로 런은 발효유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인공지능을 접목해 발효 균주의 활성을 안정화하고, 신앙촌 고유의 균주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신앙촌식품(주) 한은정 공장장은 “런은 정직과 양심으로 지켜온 철학의 산물”이라며 “앞으로도 소비자의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런의 20년은 곧 신앙촌이 걸어온 정직과 신뢰의 20년이었다. 요구르트 런은 앞으로도 이름 그대로 끊임없이 달려가며 소비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특집 플러스
천부교 2000년대의 발자취

천부교 2000년대의 발자취

2000년대 천부교는 안팎으로 성장과 도약의 시기였다. 성전이 국내외 곳곳에 세워지고, 천부교를 알리는 다큐멘터리와 홈페이지가 제작되었으며, 아름다운 신앙촌이 조성되어 신앙과 조화를 이루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진실을 바로 세운 ‘MBC 사건’ 승소 2000년대의 시작은 천부교단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99년 6월, MBC가 기획 시리즈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를 방영하며 교단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이에 천부교단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2000년 10월 27일 서울지법은 MBC의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 판결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언론의 왜곡 보도에 맞서 교단이 공식적으로 진실을 바로 세운 사건이었다. 이는 천부교를 올바르게 알리는 이정표가 되었다. 국내외에 세워진 신‧개축 천부교회 2000년대 들어 천부교는 전국 각지에서 새 제단을 세우거나 개축하며 신앙의 터전을 새롭게 다져 나갔다. 부산 광안교회, 제주 일도교회, 인천 숭의교회를 시작으로 울산, 동두천, 원주 등지에 성전이 세워졌고, 2001년 12월 23일에는 미국 뉴욕 퀸즈 지역의 뉴욕교회가 개축되었다. 1978년 뉴욕전도관으로 개관한 뉴욕교회는 개축을 통해 아름다운 성전을 마련하며, 한국을 떠나 생활하는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신축의 열기가 이어져 기장, 전농, 가야, 영주, 청평, 순창, 서마산교회 등에서도 새 제단이 완공되었다. 2008년 10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해외에서 전해졌다. 푸른 잔디 위에 자리해 마치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미국 워싱턴교회가 오랜 기다림 끝에 신축예배를 드렸다. 국내외에서 새롭게 단장한 성전들은 각 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널리 전하며, 진리의 빛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천부교를 알리는 홈페이지 개설 2004년 4월 20일, 천부교 공식 홈페이지가 문을 열었다. 홈페이지는 천부교와 신앙촌에 대한 소개와 정보, 천부교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역사관, 예배와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온방송국, 어린이를 위해 재미있고 유익하게 구성된 어린이 코너 등 다양한 채널로 구성됐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천부교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었으며, 어린이 코너는 학습과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2018년에는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해 커뮤니티와 신앙신보 코너를 추가하고 소통과 접근성을 한층 강화했으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하나님 말씀과 천부교 행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로써 천부교 홈페이지는 천부교를 알리는 중요한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 다큐멘터리 상영 2005년 추수감사절 전야 샘터공원에서 천부교 50년 역사의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이 상영되었다. 이 영상은 하나님께서 집회를 인도하시고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 전국으로 확산된 부흥 집회,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은혜를 받는 장면을 생생히 담아내 큰 감동을 주었다. 영상은 또한 정치·종교계와 언론의 핍박 속에서도 신앙촌 건설을 진두지휘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조명하며, “사람들은 기적이라 했지만 하나님의 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신앙촌은 은혜받은 사람들이 모여 죄 안 짓고 깨끗이 생활하며 신앙을 키우기 위해 세워진 신앙인의 마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다큐에는 유엔 한국 재건단 콜터 단장이 소사신앙촌을 방문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위대한 힘에 의한 창조”라고 감탄한 증언도 담겼다. 또한 1998년 9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있었던 천부교인의 장례식에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본 카르멘 코토 여사의 증언도 수록되었다. 코토 여사는 “장의사로 8년 반을 일했지만, 천부교 장례식에서 고인의 손과 몸이 제 살보다 더 부드럽게 변한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놀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코닥사의 축복 사진 감정서도 영상에 포함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 역사로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았던 이경태 감독은 “천부교인들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정말 하나님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라면 인생이겠지만, 하나님이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3년마다 이어진 천부교 체육대회 1998년 소비조합 체육대회를 기점으로 3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체육대회가 자리 잡았다. 2001년 10월 7일, 신앙촌 제강운동장에서 ‘건강한 시온인 달리는 시온인’이라는 슬로건 아래 중부와 남부지역이 청‧백군으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됐다. 이날 5km 건강 마라톤에서는 10대에서 70대까지 참가자들이 함께 뛰며 서로를 응원해 활기를 더했고, 각 팀이 준비한 화려한 응원전은 단결과 화합을 보여주며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2004년 10월 3일에는 ‘희망찬 도전, 아름다운 화합’을 주제로 또 한 번의 체육대회가 열렸고, 2007년 10월 7일 신앙촌 대운동장에서는 ‘힘찬 도약, 함께 뛰는 시온인’을 슬로건으로 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500여 명의 선수들이 그림과 글씨, 다양한 동작으로 ‘신앙촌’을 표현하는 테마 응원전을 선보여 관중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지금도 천부교 체육대회에서는 경기를 통해 인내와 협동심을 기르고, 응원을 통해 하나 된 기쁨을 나누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신앙촌 조성 2006년 신앙촌에 대규모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조화롭게 어우러진 군락지와 식당 앞 분수대가 조성되었다. 사원들의 휴식처이자 축복일에는 교인들의 산책길로, 견학생들에게는 자연의 놀이터로 활용되는 두 공간은 신앙촌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7년 5월에는 이슬성신절을 맞아 신앙촌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롭게 단장한 레스토랑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끌며, 사원과 교인 모두의 휴식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특집 플러스
지금도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지금도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1996년 추수감사절 전야, 신앙촌 밤하늘에 내린 전례 없는 규모의 이슬성신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KODAK 공식 감정을 통해 확인된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걸어오신 길은 오직 하나, 인간에게 구원의 자격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바로 그 구원의 토대를 마련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친히 준비하시고 이끄신 시기였다. 이 시기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정체를 밝히시며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다. 이어 이슬성신절을 정해 주시며, 오직 이슬성신으로만 죄를 씻고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고, 실제로 그 권능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셨다. 또한 죄와 상관없는 자격만 갖춘다면 누구에게든 구원의 은혜를 베풀 수 있음을 알려 주시며, 더 많은 사람이 그 은혜를 받고 의의 길을 걷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성전을 세우시고, 신앙생활 속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신앙촌 제품 생산의 기반도 마련해 주셨다. 전국을 순회하시며 집회를 여시고, 직접 말씀을 전해 주셨으며, 합창과 운동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도의 문을 열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앙 안에서 자라나도록 이끌어 주셨다. 이렇게 마련된 신앙의 터전과 은혜의 역사 위에서, 1990년대는 새로운 전환과 성장을 이루는 시기였다. 기쁨과 은혜를 구하는 기도문 1990년대 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고 하시며 기쁨과 즐거움, 은혜를 구하는 기도문을 주셨다.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와 미소를 주시옵소서.” 이 기도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로, 기도할수록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진심으로 구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연결된다고 말씀하셨다. 성전 신축과 재정비 한편, 1990년대는 전국 각지에서 성전의 신개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1955년 12월 원효로에 첫 전도관이 세워진 이래 전국에 제단이 건립됐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며 성전의 재정비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1993년 한 해 동안만 해도 마산, 김해, 여수, 나주, 서부, 경주, 소사동 등 7곳에서 성전이 새롭게 단장되었고,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성전 건축이 이어졌다. 특히 1996년 6월 23일에는 미국 워싱턴에 교회가 신축되며, LA와 뉴욕에 이어 해외에 또 하나의 진리의 등대가 세워졌다. 하나님의 신, 이슬성신 그리고 그해 11월, 신앙촌에서는 특별한 은혜의 현장이 펼쳐졌다. 1996년 11월 16일, 추수감사절 전날 밤 9시에서 10시 사이, 신앙촌 상공에 전례 없는 규모의 이슬성신이 임한 것이다. 당시 샘터공원에서는 국내외 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추수감사절 예배를 준비하며 축하 음악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바로 그때 동쪽 하늘에 찬란한 빛기둥 수십 개가 나타나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날 목격된 이슬성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했을 뿐 아니라 여러 대의 카메라로 생생히 촬영되었다. 당시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던 장일천 관장은 “저를 포함한 촬영팀 4명이 함께 그 놀라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현장에는 신앙촌 주민은 물론, 추수감사절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국내외 교인들이 그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사진을 현상해 보니,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기둥 빛줄기와 더불어 각양각색의 이슬성신이 찍혀 있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신앙신보사 심광수 사장은 당시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전했다. “그간의 이슬성신은 주로 실내에서 목격되었지만, 그날은 야외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났습니다. 남녀노소, 교인과 비교인을 막론하고 모두의 눈앞에서 이슬성신의 최대 향연이 펼쳐진 것입니다. 야경 사진 촬영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붉은 기둥이 빛을 내며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우측의 죽성리에서 좌측의 학리 쪽으로도 이슬성신의 기둥들이 내리고 있었고, 제가 직접 세어본 것만 해도 70여 개에 달했습니다. 그날 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신앙촌을 축복하고 계십니다’라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날 밤하늘에 임한 이슬성신을 직접 보고, 사진으로 담은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실감하며 가슴 벅찬 감동을 나누었다. KODAK의 공식 감정 이렇게 기록된 사진은 보다 명확한 검증을 위해, 당시 워싱턴교회 김동훈 관장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사진 전문 기업 코닥사에 감정을 의뢰했다. 사진과 관련 자료를 접한 코닥사의 Art/Design Director인 Michael Stack은 깊은 관심을 보이며, 필름의 종류, 카메라 종류 및 렌즈 규격, 노출 시간, 촬영 방식, 촬영 환경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요청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1월 중순, 코닥사 최고 책임자인 조지 피셔(George M.C. Fisher) 회장의 서명이 담긴 감정서가 도착했다. 피셔 회장은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귀 교회가 제시한 사진은 매우 특이합니다. 정밀히 검토한 결과, 이 사진은 진실한 것으로 판단되며, 세심하게 기록된 제반 상황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카메라의 조작이 없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특히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사진은 매우 선명하고 아름답습니다.” 이어 “사진에 나타난 빛의 원인이나 근원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실히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평선 너머의 빛이 대기 중에 반사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현상이 사실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의 손길이 이곳에 임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편지 끝에는 다음과 같은 인사가 덧붙여졌다. “이 빛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저희가 판단할 수 없으며, 이는 그것을 직접 목격한 여러분이 스스로 결정하셔야 할 일입니다. 귀 교회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는 이슬성신이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의해 과학적으로 검토되었고, 그 진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슬성신의 은혜 이슬성신은 곧 하나님의 신을 말하며, 초창기부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집회마다 뽀얀 안개처럼, 이슬비처럼, 때로는 불덩이처럼 임해 많은 사람들이 직접 그 은혜를 체험해 왔다.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으로 함께하실 때, 은혜를 받은 사람은 기쁨과 평안을 느끼며 하늘세계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고, 죄악된 삶에서 벗어나 의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밤하늘에 불기둥이 신앙촌에 내리는 것을 누구든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불기둥은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 것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만백성 앞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셨다. 1996년 추수감사절 전야를 기점으로 신앙촌 곳곳에서 이슬성신이 자주 목격되고 촬영되었으며, 지금도 그 은혜는 계속되고 있다. 문화와 전도의 도약 1996년은 천부교 문화와 전도 활동 모두에서 전환점이 된 해였다. 그해 처음으로 전국 어린이 전도의 날이 개최되어, 초대장을 직접 만들어 나누어 주고 공연과 행사를 준비하며 전도의 기쁨을 체험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매년 ‘전도의 날’을 정해 지속적인 전도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같은 해 11월에는 시온오케스트라가 창단되어, 오늘날까지 천부교의 다양한 음악 행사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생명물두부가 식품 허가를 받으면서 1980년대 생명물간장 출시 이후 신앙촌식품의 기반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러한 변화들은 1998년에도 계속되었다. 1956년 10월 16일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로 시작된 체육 활동은 1980년대까지 사원, 교역자, 부서별 대결과 농구선수 초청 경기 등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1998년 신앙촌 소비조합 체육대회를 계기로 다시 시작되었다. 이후 체육대회는 3년마다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신앙인들이 단합하여 기쁨과 건강을 나누는 천부교 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초창기부터 이어져 온 성신의 역사는 1990년대에도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으로 함께하시며 이어졌고, 그 은혜 속에서 전도와 문화가 꽃피어 오늘날 신앙의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

양산교회 - 하나님 안에 행복한 우리가 되고 싶어요

양산교회 - 하나님 안에 행복한 우리가 되고 싶어요

은혜 받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순종하며 달려오는 사람들

“천부교 역사 충북편. 부제-청주전도관 개관의 주역을 만나다.” 현재 양산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는 노광자 관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붙이고 싶은 제목이다. 50여 년의 교역생활, 고향인 청주전도관 개관의 주역으로, 충북 지역의 연풍 문의 무릉 후영 덕평 도원 문암 등등 시골 골짜기 골짜기를 찾아 남들보다 먼저 구원의 소식을 전하러 하루 평균 4,50리(10리=4㎞) 길을 걸어 다녔던 개척전도관의 처녀전도사 이야기는 […]

양산교회 - 학생회

양산교회 - 학생회

`하나님 안에 행복한 우리가 되고 싶어요`

양산교회 학생회는 교회 1층 전체를 사용하며 넉넉한 전용 공간을 갖고 있었다. 기자가 서울에서 왔다는 유미선 학생관장의 소개에 평소 서울에 가보는 것이 꿈인 이수민(중1)은 반짝 관심을 보이더니만 쑥스러운 듯 다시 자기들끼리 어울린다. 부산이란 거대 도시 옆에 양산시는 부산시의 팽창으로 많은 도시 기반시설들이 들어서며 함께 발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소박한 소도시의 모습이었다. 학생들의 정서도 그와 별반 […]

1958년 10월 6일 - 전국 체육대회에 신앙촌팀이 출전

1958년 10월 6일 - 전국 체육대회에 신앙촌팀이 출전

농구 육상 등 경기도 대표로

소사신앙촌이 건설을 시작하고 1년이 다 되어가는 때인 1958년 10월. 신앙촌팀은 경기도 대표로 39회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1958년 10월 6일자 신앙신보는 보도하고 있다. 39회 전국체육대회 예선이자 제4회 경기도 체육대회에 출전한 신앙촌 팀은 6개 종목에서 1위를 했다. 즉, 육상 5천미터, 투포환, 농구 그리고 권투의 플라이급, 밴탐급, 페더급에서 각각 1위를 하여 전국체육대회에 그 종목 경기도 대표로 출전하는 것이다. […]

평창전도관의 추억/이종순 권사

평창전도관의 추억/이종순 권사

대포껍데기 매달아 종을 치며 신나게 주일학교 반사 활동

`평창” 얼마 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발표되면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도시가 평창입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시골 골짜기의 평창전도관을 찾아서 두 번이나 오신 곳이라서 더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1960년대 초, 평창에서 서울로 가는 데는 꼬박 12시간이 걸렸습니다. 2월 어느날 이만제단에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새벽 5시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히 사람을 태우고 출발한 차는 그날 오후 5시쯤 되어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

부산교회 - 화합과 단결을 자랑하는 교회

부산교회 - 화합과 단결을 자랑하는 교회

화합과 단결을 자랑하는 교회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항구도시인 부산, 6·25 전쟁 시에 수많은 난민들이 힘들게 둥지를 틀고 삶을 꾸려가던 곳이다. 부산중앙교회는 부산의 관문인 금정구 구서동 금정문화회관 마당을 마주하고 있다. 이 지역은 부산의 관문으로서 경부고속도로, 도시고속도로, 산업도로 및 도시철도 1호선의 시발점으로 육로 교통의 접속 지점에 속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탁 트인 시야가 금정구를 삼킬 듯하다. 현재 부산중앙교회는 1년에 걸친 공사 […]

덕소교회 덕소 1반

덕소교회 덕소 1반

하나님의 뜻을 널리 전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요즘 우리 덕소 1반의 기쁨은 새 교인들이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것이에요.” 덕소 1반 회장 김향자 권사는 지난 5월에 열렸던 새교인 합창 경연대회 이야기를 했다. “합창 경연 대회에 우리 반 새 교인들이 많이 참여 했어요. 그날 우리 반이 우수상을 받았는데 저희도 기뻤지만 특히 매주 안 빠지고 합창 연습했던 새 교인들이 뛸 듯이 기뻐했어요. 새 교인 중에는 […]

김정희/기장신앙촌-신앙촌 건설하며 찍은 사진

김정희/기장신앙촌-신앙촌 건설하며 찍은 사진

어려운 고비 때마다 힘 주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동네(충남 서산군 이북면)에 처음 전도관(이북 전도관)이 생기고 오빠가 열심으로 믿으면서 동생과 저도 따라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는 군대에 가면서 저를 소사신앙촌에 들여보내고 떠났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축복을 받으며 신앙촌에 들여보내 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60년이었습니다. 2년만인 1962년 7월 20일에 덕소신앙촌 건설대로 뽑혀서 가게 되었습니다. 왔더니 두 동의 임시 숙소와 화장실만 지어져 있는 […]

안동교회 - 안동에서 펼쳐졌던 은혜의 역사를 다시 한번

안동교회 - 안동에서 펼쳐졌던 은혜의 역사를 다시 한번

안동에서 펼쳐졌던 은혜의 역사를 다시 한번

●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진 안동 1955년 5월 안동역 부근 낙동강 변 백사장에서 열린 안동집회에 참석한 권선옥, 이순복 권사는 지금도 당시 집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백사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 하나님 은혜로 병이 나은 환자들, 하나님께서 안수를 해주시던 모습, 폭포수처럼 쏟아진 뽀얀 이슬성신 그 광경은 잊을 수 없지요.” 안동집회가 열렸던 백사장에는 현재 4대강 개발이 한창 진행 […]

안동교회 - 학생회

안동교회 - 학생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

7월 16일 여름 방학식을 마치고 안동교회에 아이들이 모였다. 신예지(유년회장, 초6)는 아이들과 언니들을 두루 잘 챙겨서 인기만점이었다. 예지는 하나님이 예뻐하시는 모습을 실천하기 위해 요즘 30분 기도드리기를 매일 하고 있다. 예지의 모습을 보고 김세상(초3)도 요즘 기도하는 즐거움에 빠졌다고 한다. “처음엔 길고 힘들었던 30분 기도드리기 시간이 지금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 좋다”며 예지는 밝게 웃었다. 정혜인(초5)은 착하고 웃는 인상이라 […]

덕소신앙촌 수예공장의 추억

덕소신앙촌 수예공장의 추억

일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따라 수예 모양이 차이가 나고...

덕소신앙촌 수예공장에서 동료들과 전국의 소비조합원들한테 주문받은 다우다 이불을 발송하기 위해 일하던 중에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 저는 수예부 현장 책임자로 있었는데 주로 수예사들이 놓은 수예를 검사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진 속의 이불은 장미꽃, 목단꽃이 수놓여진 다우다 이불인데 인기가 참 많았습니다. 수예 검사를 하다보면 수놓은 모양만 보아도 그 많은 수예사 중에 누가 놓은 수예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일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