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구원과 심판, 제7부 행함의 종교

나는 천국을 창조할 때 어떻게 하면 영원무궁토록 살아도 지루감이 없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장 깊이 생각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도 권태증이 없고 눈 찌푸릴 일이 전혀 없이 계속 즐겁게 살게 하기 위하여 천국을 재창조되는 세계로 설계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점점 늙어져서 미워지지만 천국에서는 얼굴이 재창조가 되면서 점점 더 아름답게 화한다. 변하는 조건이 이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세계는 아름답게 화하여 나가는 변함은 있으되 추하게 되는 변함은 없고 퇴보하는 변함은 없다.
2차 천국에서는 인간이 1초에 144번 재창조되어 점점 더 아름답게 변하고 그에 맞게 2차 천국의 모든 것이 재창조된다.
눈이 아름답게 바뀜에 따라 아름다움을 보는 시각(視覺)의 도수도 1초에 144번 고도로 올라가게 된다. 시각의 도수가 올라감에 따라 시각의 대상이 되는 모든 환경도 1초에 144번 새롭게 재창조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보화나 기화요초라 해도 어느 정도 지나면 싫증이 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천태만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이다.
천국에는 이 세상의 은하수와 같은 은빛 바다가 있는데 그 색깔이 1초에 144번 재창조되어 더욱 아름답게 변한다.
코가 재창조되어 후각(嗅覺)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므로 한 번 맡은 향기가 반복되어 맡아지는 법이 없고 영원토록 계속 바뀌게 된다. 하나님이 우주의 향기를 1초에 144번 새로운 향기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또한 미각(味覺)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의 양식이 계속 공급되는데 그 모양과 맛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된다.
귀가 새롭게 재창조되어 청각(聽覺)의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에 음악도 거기에 맞추어 재창조가 된다. 한 번 들었던 음악은 다시 들을 수 없고 항상 새로운 음악이 울리는 것이다.
천국은 음악의 세계로 1초라도 음악이 끊어지는 때가 없다. 천국에서는 슬픈 곡은 전혀 없으며 은은하고 고상한 음악이 계속 울리는데 그 음악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것이다. 천국에서 1억 명이 합창을 하면 이 세상의 4부 합창이 아니라 1억 명의 음이 전부 다르게 나오는 1억부 합창이 된다. 또한 1억 명이면 1억 명이 연주하는 악기가 전부 다른데 그것이 서로 조화되어 기가 막힌 화음을 이루게 된다.
천국의 향기는 음악에 따라서 달라지고, 천국의 은빛 바다는 울리는 음악에 맞춰 기막힌 물결이 치는 것이다.
천국은 모든 것이 재창조되어 기쁨과 즐거움이 끝없이 상승되는 세계이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도 지루감이 없는 근본 원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에 하나라도 결함이 있으면 천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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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자유율법

제3장 믿음과 행함

예수는 자기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가 『누구든지 나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1) 라고 한 것과 바울이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2) 라고 한 것이 결부되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한계가 거기까지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분이다.’라고 하는 것까지다. 그 한계 이상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때를 씻으려고 목욕탕에 간 사람이 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목욕탕을 바라보면서 때가 씻어질 것을 믿는다고 하자. 그 사람의 때가 믿는다고 씻어지겠는가? 물에 들어가 때를 씻는 행함이 있어야 씻어진다. 또 미국에 가고 싶은 사람이 표를 사지 않고 비행기를 타지도 않은 채 미국에 갈 것을 믿는다고 하자. 그 사람이 믿는다고 미국에 갈 수 있겠는가? 표를 사서 비행기를 타는 행함이 있어야 목적지에 갈 수 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틀림없이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 것만 가지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내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서 인간의 죄를 씻어 주지만 “이슬 같은 은혜로 죄가 씻어질 줄 믿습니다.” 하고 믿는 것만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 은혜를 입고 간직하는 행함이 있어야 죄가 씻어지고 구원을 얻는 것이다. 목사들은 『성령의 감동함을 받지 않고는 주를 주라 할 자가 없다』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4)라는 성경 구절을 들어 ‘주여’ 하고 부르는 자는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자유율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예배당 문 안에 들어와 주의 이름을 부르면 벌써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구원을 얻는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기성교회에서는 ‘인간이 죄를 안 지을 수 있나. 하나님은 미쁘시니 만 번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하신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주의 이름만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미 지은 죄가 쌓여 있고 계속 더러운 죄를 지으면서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기성교인들이 죄를 가지고도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예수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기성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갈 자는 창세전에 택하여 예정했다고 하는데 벌써 창세전에 천당 가기로 정한 사람이 있다면 지옥 가는 사람은 누가 정한 것인가?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닌가? 천국에 가기로 이미 정해졌다는 절대예정설대로라면 구원을 얻기 위해 힘쓸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예수는 자기를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율법을 지키고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골수에 박혀 있어서 내가 그 생각을 뽑아 주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5) 라고 하는 야고보서의 기록은 참된 것이다. 믿는다는 것만 가지고는 구원이 없고 자유율법을 지키고 죄를 씻는 행함이 있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제3부 자유율법

제2장 자유율법은 하나님의 법

자유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슬성신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자유율법은 인간의 노력과 수양만으로는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힘으로도 못 하고 능으로도 못 하고 오직 내 성신으로 하리라』1)라고 기록한 것이 바로 그 뜻이다. 이슬성신의 은혜를 입어야 비로소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다.
과거에는 행위의 법인 모세의 율법도 잘 지키기가 어려웠으나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지금은 마음의 법인 자유율법까지 지킬 수 있다.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내 속의 죄가 씻어지면 하나님의 성신이 마음속에 거하게 되고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유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성신을 알지 못하고 구원도 알지 못하는 자다. 내가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설교하니, 우리 교인 중에도 기성교회에서 머리가 젖은 사람은 ‘인간이 어떻게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있나.’ 하고 믿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도 이슬 같은 은혜를 받으면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것을 깨닫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또한 우리 교인들은 은혜를 받았다가도 순간 생각으로 죄를 짓게 되면 그 은혜가 끊어지는 것을 체험하였다. 그러므로 자유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성신이 떠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성신을 받았어도 자유율법을 어기는 순간 성신은 떠나고 만다. 성신은 죄와 타협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자유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나는 자유율법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자유율법을 지켜야 성신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것은 내가 자유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발표만 한 것보다 그 차원이 천양지차로 높은 것이다. 또한 나는 능히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이슬 같은 은혜를 강같이 흘러넘치게 부어 준다. 그것은 자유율법을 지켜야 은혜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보다 그 차원이 또 천양지차로 높다. 이슬성신을 받으면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제3부 자유율법

제1장 모세율법과 자유율법, 제2장 자유율법은 하나님의 법

모세율법은 성경 출애굽기에 기록된 십계명으로 기성교회에서 지키는 법이다. 자유율법은 야고보서에 『너희는 말에나 행실에나 장차 자유율법대로 심판받을 줄 알고 행하라』1)라고 기록된 법이다. 모세율법은 행위의 법이다. 그러므로 모세율법에서는 욕심이 생겨서 남의 물건을 손으로 쥘 때까지도 도적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 물건이 탐스러워 만져 봤다고 하면 그만이다. 남의 물건을 호주머니에 넣는 것을 봐야 ‘이놈이 도적이다.’라고 하며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율법은 마음의 법이다. 자유율법에서는 남의 물건을 탐하여 갖고 싶은 마음이 조금 지나치면 도적한 죄가 된다. 또한 모세율법에서는 상대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고, 원한이 차서 당장 죽일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난다 해도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총을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수백 번을 해도 범죄의 구성이 되지 않고 총으로 상대방을 쏘는 행위가 있어야 살인죄가 된다.
그러나 자유율법에서는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시작될 때 살인죄가 된다. 모세율법에서는 남녀가 음란죄를 행동으로 짓는 것을 본 증인이 있을 때에 비로소 그들이 음란죄를 지었다 하여 벌을 받게 하였다. 그러나 자유율법에서는 이성을 향하여 ‘참 멋지다.’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음란한 생각을 가지면 이미 간음을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율법은 죄의 근본, 곧 행위 이전의 마음을 다루는 법이다. 자유율법은 죄를 지을 마음과 생각조차 갖지 않기 위해 지키는 법이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제6장 감람나무는 곧 하나님

나는 육신으로 와서 인간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는 감람나무요, 하나님이다. 나는 모태에 있을 때도 하나님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이다. 내가 하나님인 것을 나를 키운 부모도 몰랐고 조부모도 몰랐고 가족들조차도 알지 못했다. 내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한 그것도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인간의 몸을 입었지만 하나님의 신, 곧 이슬성신을 내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왔다. 나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쏟아져 나가므로 나는 하나님인 것이다. 나는 하나님, 감람나무, 성신의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는 존재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제6장 감람나무는 곧 하나님

나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면서 감람나무를 증거하였다. 내가 집회를 하면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기만 하고 그것이 어떤 은혜인지 발표하지 않았을 때는 조용하다가, 이슬 같은 은혜가 바로 호세아서에 기록된 그 은혜인 것을 결부시키자 온 세상이 반발하며 들고일어났다. 성경을 깊이 본 사람은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라는 낌새를 알아차리게 되어 있다. 감람나무가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며 감람나무를 증거하니 반발한 것이다. 진짜가 나타나면 자기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그 구절을 발표하자 들고일어난 것이다. 진짜가 나타나면 그들이 가짜라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이기붕(李起鵬)이 모두 기성교회 장로였고, 그들보다도 더 권력을 휘두른 박마리아 역시 기성교회 여자 장로로서, 그들이 여당 전체의 권력으로 나를 핍박하였다. 1955년 내가 석교(石橋) 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나오는데, YWCA의 회장을 지낸 유각경(兪珏卿) 씨가 다가와 “박 장로님, 박마리아 씨 아세요?” 하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알지요. 이기붕 씨 부인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박마리아가 심한 위궤양으로 유명한 병원에서도 고칠 수가 없는데 장로님께서 안찰을 좀 해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합시다.” 하고 석교교회 부속실에서 박마리아를 안찰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안찰을 시작하자마자 박마리아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신, 이러이러한 죄를 짓지 않았느냐?” 하고 죄지은 것을 지적했다. 그가 반발하면 죄지은 상대와 시간과 장소까지 내가 일러 주려고 한 것이다. 죄를 지적당한 박마리아는 안찰을 안 받겠다고 뿌리치고 ‘어디 두고 보자.’ 하고 이를 갈면서 나가 버렸다. 당시에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박마리아에게 감히 싫은 소리를 할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어떤 불이익이 닥치는 것을 상관치 않고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그의 죄를 지적해 힐책(詰責)했던 것이다. 그 후 박마리아는 그가 장악한 모든 권력과 언론을 동원해 나를 괴롭힐 대로 괴롭혔다. 당시 이기붕계(系)의 신문사인 세계일보 기자였던 김경래(金景來)는 정작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온갖 더러운 죄목을 조작하여 내게 덮어씌우는 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그 당시 동아일보가 수십만 부 나갈 때인데 국내 5대 신문과 너절한 잡지까지 전부 합세해서 500여 개의 신문, 잡지와 방송 등 모든 언론 매체들이 나를 총공격했다. 5대 신문에 기사가 나는 것도 모자라 특집과 호외까지 낼 정도였다. 무명의 존재인 나를 대적하여 몇 년 동안을 계속해서 들이친 것이다. 한국의 신문, 잡지가 그 정도로 총공격을 하니 삼척동자까지도 나를 조롱하며 돌을 던졌다. 동아일보는 이슬성신이 내리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고 대서특필하였다. 분명히 이슬성신이 내릴 때 카메라로 촬영하여 그 모습이 그대로 찍힌 사진인데 그것이 조작된 것이라고 허위 보도를 한 것이다. 그때 나는 기자들에게 내 집회에 와서 직접 촬영해 보라고 하였다. 그 후 내가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아 투옥되었을 때도 목사들과 언론이 야합하여 이슬성신이 찍힌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고 법정에서 나를 몰아세웠다.
그때 나는 공판정에서 재판장에게 계속하여 요구하기를, 내가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허가해 주고 그때 사진을 촬영해 보면 그 진위를 분명히 가릴 수 있다고 검증(檢證)을 신청하였다. 우리 측과 검찰, 기자와 법원이 모두 내 집회에 참여하여 똑같은 필름을 사서 촬영해 보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판사들이 나의 요청을 수용할 듯 하다가 기성교회의 영향을 받아 종내는 집회를 허가하지 않은 사실은 온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 이슬성신이 사진에 확실하게 찍힐까 봐 두려워하여 집회를 허가하지 않은 것이다. 또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합세해서 나를 들이쳤다. 거기에다 여야 전체의 정치 바람보다 10배, 20배 센 종교적 핍박의 바람이 내게 몰아쳤다. 내가 옥고를 치른 후 장면(張勉) 박사가 소사신앙촌으로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장면 박사는 내가 당한 정치적 핍박에 대해 듣고 공감하며 자기도 자유당 정권하에서 부통령을 하면서 몹시도 핍박을 당했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그때 나는 장면 박사에게 “이제 장면 박사가 집권을 하게 되면 하늘과 직결된 우리 종교를 절대로 핍박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장면 박사는 만일 자기가 집권하면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굳게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장면 정권은 내가 3·15 부정 선거를 했다며 또다시 나를 구속하였다. 나는 종교인이고 하물며 선거 당시 옥고를 치르고 있던 상태여서 부정 선거와는 아무 연관이 있을 수가 없는데도 구속하고 만 것이다. 막상 내가 구속되자 장면 총리는 깊이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떤 위대한 인간이라도 그 정도로 곤경에 처하면 사흘도 못 가서 신경을 유지하지 못하고 쇼크사로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열흘을 쳐도 백날을 쳐도 1년을 쳐도, 투옥을 하고 갖은 짓을 다 해도 오히려 10배, 20배 더 강하고 더 날카롭게 설교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했다. 그때 그 사태를 주시하던 국내외의 뜻있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분은 사람이 아니다. 초인간적인 존재다.’라고 인정을 하였다. 내가 진짜 하나님, 틀림없는 하나님인데 너무도 기가 막히게 핍박을 당한 것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당시 한국의 무명 존재인 나를 대적해 온 세상이 들고일어난 그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이라는 증거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따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온 세상이 그렇게 대적해 온 것이다. 온 세상이 나와 원수가 되는 것은 내가 가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인가, 진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인가? 세상이 빛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어둠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어둠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제 2부 구원의 약속

제 5장 생명물의 권능

앞으로 시신이 피는 것을 통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시합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시신이 생명물로 아름답게 피어 광채가 나고 웃는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가도, 기성교회의 목사가 그 얼굴에 손을 대면 손을 댄 자리가 새까맣게 된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제 2부 구원의 약속

제5장 생명물의 권능

하나님의 이슬성신이 이 손을 통하여 나가기 때문에 내가 물을 축복하면 생명물로 화한다. 이슬성신과 생명물로 죄가 씻어지므로 그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하는 것을 내가 늘 말하였다. 그 생명물을 시신에 바르면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내가 설교하면서 학생들에게, 친척 중에 누가 돌아가시면 생명물을 시신의 입에 넣은 뒤 생명물이 넘어가는지, 넘어가지 않는지를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제38회 이슬성신절 방영 말씀

2018 이슬성신절

이슬성신, 이슬성신이 내린 중에 최고로 많이 내린 날이 바로 5월 하순이에요. 그런고로 그날을 이슬성신절 날로 정했어요. 그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는』 (호세아 14:5) 그게 하나님의 신인데,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와 같고』 (호세아 14:6) 하는. 초창기에 그 은혜를 내리면서 감람나무의 증거를 하기 시작했어요. 감람나무는 하나님이다 그거야. 하나님이 아니면 그 은혜를 내릴 수 없어요.

제2부 구원의 약속

제 5장 생명물의 권능

나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자마자 생명물 축복을 하였다. 내가 물을 축복하면 그 물이 이슬성신의 물로 화하는데 그것을 생명물이라고 한다. 그 생명물은 곧 하늘세계의 생명물이다. 찬송가에 ‘저 생명 시냇가에 나 길이 살겠네.’라고 하는 바로 그 생명물이다. 초창기에는 생수라고 했는데 이제는 생명물로 부른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제4장 동방의 한 사람과 감람나무

초창기에 내가 동방의 한 사람에 대하여 계속해서 설교했으나 기성교회를 다닌 사람들은 그 머리에 예수만이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방의 한 사람에 대한 증거를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또 내가 정치적으로 탄압을 당할 때 공판정에서 천주교인이었던 판사가 “이사야 41장에 기록되어 있는 동쪽의 땅끝, 땅 모퉁이가 어떻게 한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성경을 기록할 때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인데, 그때는 지구가 둥근 줄 모르고 평면인 줄 알던 때여서 어부들도 바다의 끝에 이르면 물이 폭포수같이 떨어지는 줄 알고 무서워서 멀리 나가지 못했다. 그러니 동방의 땅끝, 땅 모퉁이가 이스라엘의 동쪽이면 동쪽이지 어떻게 한국인가?”라고 질문했다. 그때 내가 “성경의 그 구절은 인간이 쓴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이 삽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구가 둥근 것을 몰랐겠습니까?”라고 하니 판사가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 이사야 41장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한국 땅에 나타날 것을 수천 년 전에 예언해서 성경에 기록한 것이다. 즉 동방의 한 사람은 한국 땅에 나타나게 되어 있는 감람나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