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구원과 심판, 제7부 행함의 종교

나는 천국을 창조할 때 어떻게 하면 영원무궁토록 살아도 지루감이 없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장 깊이 생각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도 권태증이 없고 눈 찌푸릴 일이 전혀 없이 계속 즐겁게 살게 하기 위하여 천국을 재창조되는 세계로 설계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점점 늙어져서 미워지지만 천국에서는 얼굴이 재창조가 되면서 점점 더 아름답게 화한다. 변하는 조건이 이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세계는 아름답게 화하여 나가는 변함은 있으되 추하게 되는 변함은 없고 퇴보하는 변함은 없다.
2차 천국에서는 인간이 1초에 144번 재창조되어 점점 더 아름답게 변하고 그에 맞게 2차 천국의 모든 것이 재창조된다.
눈이 아름답게 바뀜에 따라 아름다움을 보는 시각(視覺)의 도수도 1초에 144번 고도로 올라가게 된다. 시각의 도수가 올라감에 따라 시각의 대상이 되는 모든 환경도 1초에 144번 새롭게 재창조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보화나 기화요초라 해도 어느 정도 지나면 싫증이 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천태만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이다.
천국에는 이 세상의 은하수와 같은 은빛 바다가 있는데 그 색깔이 1초에 144번 재창조되어 더욱 아름답게 변한다.
코가 재창조되어 후각(嗅覺)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므로 한 번 맡은 향기가 반복되어 맡아지는 법이 없고 영원토록 계속 바뀌게 된다. 하나님이 우주의 향기를 1초에 144번 새로운 향기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또한 미각(味覺)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의 양식이 계속 공급되는데 그 모양과 맛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된다.
귀가 새롭게 재창조되어 청각(聽覺)의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에 음악도 거기에 맞추어 재창조가 된다. 한 번 들었던 음악은 다시 들을 수 없고 항상 새로운 음악이 울리는 것이다.
천국은 음악의 세계로 1초라도 음악이 끊어지는 때가 없다. 천국에서는 슬픈 곡은 전혀 없으며 은은하고 고상한 음악이 계속 울리는데 그 음악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것이다. 천국에서 1억 명이 합창을 하면 이 세상의 4부 합창이 아니라 1억 명의 음이 전부 다르게 나오는 1억부 합창이 된다. 또한 1억 명이면 1억 명이 연주하는 악기가 전부 다른데 그것이 서로 조화되어 기가 막힌 화음을 이루게 된다.
천국의 향기는 음악에 따라서 달라지고, 천국의 은빛 바다는 울리는 음악에 맞춰 기막힌 물결이 치는 것이다.
천국은 모든 것이 재창조되어 기쁨과 즐거움이 끝없이 상승되는 세계이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도 지루감이 없는 근본 원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에 하나라도 결함이 있으면 천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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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성경과 예수

제5장 바울의 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 『주에게 속한 사람이 14년 전에 삼층천을 가 봤다.』1)라고 했다. 그는 삼층천이 낙원이라고 하면서 낙원에 갔을 때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1)라고 했다. 낙원이라는 것은 내가 창조한 곳인데 그곳이 왜 창조가 되었으며 어디에 있고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만약에 바울이 낙원에 가 봤다면 낙원이 어떠한 곳인지 조금이라도 발표해야 되는데, 바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바울은 그저 『그것은 하나님이 아신다』1)라고만 했을 뿐이었다. 하나님이 아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신이 낙원에 가 보았으면 본 대로 말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낙원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중하게 여길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1) 하며 마치 겸손해서 낙원에 대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꾸며 놓았다. 또 바울은 낙원에 가 본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것처럼 『주에게 속한 사람』 이라고 했지만 그다음 문맥을 보면 분명히 바울 자신을 말한 것이다.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누가 자신에게 낙원에 대해 말해 보라고 따지면 “낙원에 가 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라고 핑계를 댈 것까지 마련해 놓은 것이다. 낙원에 가 봤다고 하면서도 낙원에 대해 조금도 말하지 못하는 자는 하늘세계를 아는 자인가, 모르는 자인가?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자들이 하늘세계를 아는 것인가, 모르는 것인가? 예수의 사도 중에 가장 유식하다는 바울도 하늘세계를 알지 못하니 구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자다. 천국을 알지 못하고는 천국에 갈 수가 없고 가게 해 줄 수도 없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5장 바울의 죄

바울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고 유명할 뿐 아니라 매우 유식한 사람이다. 신약의 반 이상이 바울의 편지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더럽고 추한 죄를 지었던 죄상은 드러나지 않고 가려져 있었다. 이것은 온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내가 밝히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1)라고 하여 입 맞추는 것을 거룩해진다고 하였다. 바울의 이와 같은 말은 로마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도 있다.2) 바울의 편지에는 많은 여성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바울은 그들에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에 특별히 『참 과부를 공경하라』3)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거룩하게 입맞춤하라는 것과 결부되었다. 독신이었던 바울은 여인들을 가까이하고 문안을 핑계로 포옹하고 키스를 많이 했는데, 처녀와 유부녀보다 말썽의 소지가 없는 과부들과 그리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 소문이 퍼지자 키스를 하면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여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였다. 이렇게 하여 키스하면서 문안하라는 바울의 말이 성경이 되었다.
이런 성경을 따라야 하겠는가? 바울이 아무리 유식하다고 한들, 또 무슨 신기한 기사와 이적을 행했든 키스하라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베드로도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4)라고 했다. 그런 말이 기록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겠는가? 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되겠는가?
성경의 98퍼센트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양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은 성경 말씀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라고 한 바울의 말대로 실행하였다. 그들은 바울의 말대로 남녀 간에 인사할 때 친구의 부인이든, 자기 형의 부인이든, 동생의 부인이든 입맞춤을 하다가 온 나라가 음란하게 되었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구교의 핍박을 피해 잘 믿어 보려고 이민을 간 곳인데, 성경대로 믿는다고 하다가 문란하게 되었고 전 세계에 음풍을 퍼트린 원조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은 2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4장 구원을 몰랐던 성경의 인물들

성경 66권에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성경이 구원의 말씀이라면 구원에 필요한 사람, 구원을 얻는 데 본받을 만한 사람, 구원에 대해 교훈적인 사람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구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성경이 구원을 얻기 위한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성경의 인물들은 구원을 알지도 못하고 구원을 얻는 데 교훈이 될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추앙받는 아브라함은 첩을 얻은 사람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支派)의 조상이라는 야곱 또한 첩을 셋씩이나 얻은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 시대에 아브라함 다음가는 인물이요,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향하여 깊이 탄식한 의인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때 천사가 롯의 가족에게 속히 성을 나가라고 하였다. 롯의 처와 두 딸이 유황불이 내리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나가는 중에 롯의 처가 재산을 버리고 가는 것이 아까워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하여 롯과 두 딸은 산중 깊은 곳까지 도망을 가서 굴속에 숨었는데 그때 롯은 두 딸과 범죄를 했다. 딸 하나가 “이제 인종이 다 멸종되었는데 우리가 어디 가서 손(孫)을 얻겠는가?”라고 하여 롯에게 술을 먹여 범죄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맏딸이 범죄를 해서 아이를 낳게 되고, 그다음 날은 둘째 딸이 범죄를 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다.1) 내가 일본 동경에서 이것을 가지고 세계적인 신학자에게 “이런 사람이 어떻게 완전한 의인인가?”라고 따졌더니, 그는 “롯이 술에 너무 취해서 감각을 모른 것이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감각을 모르면 아이가 생길 수 있는가? 아무리 술에 취해도 아이가 생길 정도면 감각을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롯에게 구원의 기대가 있는가? 롯이 구원의 연구 자료가 되는가? 오히려 그는 구원에 해독(害毒)이 되는 인물일 뿐이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3장 성경의 진실

지금까지 인류는 성경이 100퍼센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 왔지만, 내가 성경의 98퍼센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발표했다. 내가 발표하기 전에는 그 사실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것도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다.
기성교회의 신학자들은 성경에 일점일획도 거짓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창세기의 1장 1절부터가 엉터리로 꾸며진 것을 보아도 그 말이 틀린 것을 알 수 있다. 성경 66권 가운데 하나님이 직접 계시(啓示)를 주어 삽입한 말씀은 2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러므로 내가 조종해서 쓴 구절을 빼 버리면 성경은 우스운 글이 된다. 하나님이 삽입한 그 말씀만이 귀하고 보배로운 구원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다. 성경의 일부에는 죄에서 벗어나 성결하게 살 것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귀하게 보는 것이다.
내가 성경에 삽입한 구절이 어떤 것인지를 여러분들에게 가려내 줄 수 있다. 이 역사를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기성교회의 목사들은 내가 성경 중에서 나에게 적합한 구절만 골라서 본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2퍼센트만이 하나님의 글이라는 것을 깨닫고 보면 내가 적합한 구절만 본 것인가? 진짜 하나님의 말씀만 본 것인가? 진짜 하나님의 말씀만 본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 중에 사람을 맑게 만드는 말씀은 내가 조종해서 기록한 것이다. 야고보서의 『너희는 자유율법대로 심판받을 줄 알고 행하라』1) 『온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만 범하면 모두 범함이 되느니라』2)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이미 몇천 년 전에 나는 자유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야고보를 통해 성경에 기록하게 했지만 사람들은 그 구절을 보고서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기성교회에서는 모세의 법만 지키면 된다고 했지, 자유율법은 알지도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 또 성경에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그 배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3)라고 했는데 예수는 그 뜻을 알고 말했는가, 뜻을 모르면서 말했는가? 예수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면 기성교회에 그와 같은 생수가 있었겠는가, 없었겠는가? 그러므로 나의 것을 그때 예수 입을 통해 말하도록 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서도 생명물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 생수는 바로 나의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의 생명물이다.
기성교회에서는 내가 다른 성경을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성경을 개역하여 다른 성경을 만들어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 히브리 원어를 알면 히브리 원어 성경을 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편찬된 구역 관주성경을 보아야 한다.
내가 창세기의 허구를 지적하면 그들은 또 창세기를 뜯어고치게 되어 있다.
내가 성경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4)라는 구절을 삽입했는데, 그것은 인도하는 자와 따라가는 자가 모두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목사들은 교인들의 눈을 가려야만 거짓으로 끌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눈을 가려서 끌고 가는 것이다. 초창기부터 내가 했던 설교를 그 후에 목사들이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성경의 거짓을 지적한 후에는 성경에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다고 하던 그들이 내 설교를 따라 하는 것이다. 전 세계 기성교인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 중에는 인간이 구원을 얻는 데 방해가 되고 해독(害毒)이 되는 내용이 많다.
나는 구원을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온 감람나무이므로 성경 중에 하나님의 글이 아니고 구원에 해독이 되는 내용을 가려서 밝혀 주는 것이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3장 성경의 진실

성경의 신약과 구약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나 움직임 등을 기록해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책이 아니라 양피와 나무껍질에 기록하여 웬만한 크기의 창고에 가득할 만큼 그 양이 많았다. 그런데 종교적 핍박이 심하면 기록한 것을 땅에 묻어서 습기가 차기도 하고 또 불태워지기도 하여 전체 기록이 잘 보관되지 못하였다.
불에 타다 남거나 습기가 차서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 것들을 성경 편찬 위원들이 자신의 구미에 맞고 비위에 맞는 내용을 뽑아서 편찬한 것이 오늘날의 성경이다. 또한 성경은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을 수집해서 편찬 위원들의 수준에서 적당히 편집한 것이다. 만일 편찬 위원 중에 성신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면 성경 중에 하나님 말씀의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성신을 받은 편찬 위원이 지워지고 불에 타 버린 글의 뜻을 몰라 하나님께 간구했다면, 내가 거기에 끊어진 글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편찬할 때 편찬 위원들은 성령을 받아 기록해 넣은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꾸며 넣은 것이 많았다.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성경에는 인간이 꾸며서 가필(加筆)한 것이 있고 완전히 거짓말한 것도 있다. 하나님이 아니면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하나님으로서야 진짜와 가짜, 참과 거짓을 구분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신약은 조금 앞뒤가 맞는 것 같지만, 구약은 글이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하는 것과 같이 문맥이 맞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를 부분이 많다. 또 어떤 내용은 신화나 전설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 성경이 참말이겠는가, 거짓말이겠는가? 성경이 이와 같이 된 것이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2장 창세기의 거짓을 밝히신 하나님

어떠한 문헌이든 원칙과 근본에 오류가 있다면 그 내용 전체가 틀린 것이 된다. 문헌의 첫 페이지에 기록된 총론(總論)에 오류가 있다면 각론(各論) 전부는 오류가 될 수밖에 없다. 성경은 총론인 창세기부터 바로 이와 같이 허구로 되어 있다. 성경의 내용 대부분이 거짓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세기를 비롯한 성경에는 실제 천국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천국을 창조한 창조주 이외에는 천국에 대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천국에 관한 것은 캄캄한 밤중같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귀는 1차 천국의 모습을 속속들이 다 보았다. 천국에서 사는 존재는 오장육부가 없고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는 것을 마귀는 보았던 것이다. 또한 1차 천국에는 땅이 없고 흙이 없고 보화뿐이므로 심어서 나오는 것이 없고 썩는 것이 없다는 것도 마귀는 다 보았다. 그러나 마귀는 1차 천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왕 중의 왕마귀와 마귀 전체의 머릿속에서 1차 천국에서 본 기억을 모두 빼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마귀의 머리를 자유자재로 조종하여 그 머릿속에서 기억을 뽑을 수도 있고 집어넣을 수도 있다.
창세기는 마귀가 하나님 행세를 하려고 모세에게 계시를 주어 기록하게 한 것인데 천국을 모르는 마귀가 창세기를 엉터리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자유율법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2018 추수감사절 방영 말씀

오늘은 추수감사절.
여기 추수한 바 모든 알곡이라고 하는 것은 곡식의 추수가 아닌 것이에요. “추수한 바 모든 알곡 천국 창에 들이니” 하는 것은 세상 곡식이 천국 창고에 들어가는 게 아닌 것이에요. 이건 추림을 받은 자요, 알곡인 것이에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인다는 것은 바로 천국 창인 것이에요. ‘천국 창고에 들인 후 주가 베푼 연회석에 우리가 다 가서 참예하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추수한 바 모든 알곡 천국 창에 들인 후 주가 베푼 연회석에 우리 들어가겠네.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도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이 추수 찬송은 인생의 추수를 말하는 거예요. 그런고로 매시간 아니라 1초 1초 하나님은 살피시는 거예요. 마음속 전체를 감찰하시는 불꽃같은 눈으로 각자 각자의 그 모든 것을 살피시고 기억하시는 거예요. 그저 뭐 갖은 짓을 다 해도 그날에 가서 뭐 통과가 되는 게 있나 하는 건 꿈에도 바라지 마세요. 세상과는 달라요. 1초 1초의 지금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전부 달아서 기록하는 거예요. 그게 그날에 가서 다 드러나고 심판대 앞에 가서 드러나는 거지요. 그런고로 일주일 동안 갖은 짓을 다 하다가 행세꾼같이 나와 앉아 있어서는 안 되게 돼 있어요.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세상에 과학적으로 정확히 한다는 것도 다 그 기록이 나와요. 전부 기계가 컴퓨터화했어요. 컴퓨터가, 전자 두뇌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럼 세상 과학적으로 기계가 움직이는 것도 전체 기록이 나오는데, 하물며 인간이 영원히 죽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이 법도를 어기는 자는 영원히 지옥 간다는데 무슨 걸 다 어겨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여호와가 아닌 것이에요. 그런고로 여러분들에게 다시 말해요.
아주 세밀하신 하나님, 아주 정확하신 하나님, 아주 빈틈없는 하나님이에요. 그 모든 마음의 움직이는 것 전체를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언제든지 그 모든 것을 살피니, 기동하는 전체를 살피니,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여 구원을 구분 지으리라 하는 거예요. 심판의 권세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고로 그 심판은 두려운 것이 곧 거기에 있는 것이에요. 『너희는 자유율법대로 심판받을 줄 알고 행하라』 (야고보 2:12) 하는 것이 양심의 법인 것이에요. 생각으로 마음으로 눈길로도 범법하지 못하게 돼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에게 가르친 법은 곧 그 법인 것이에요. ‘아 마이크가 조그만 것, 참 이렇게 울려 나가는 탐스러운 것, 가지고 싶다.’ 하는 맘이 막 끓어서 올라왔어도 손이 가서 이것을 넣기 전에는 죄가 아니에요. 손이 나가는 데까지라도 그 만져 보기 위하여 나갔겠지 하는 걸로 법에 걸리지 않아요. 그러나 주의 법은 ‘아 요거 탐난다. 갖고 싶다.’ 하는 마음이 벌써 도적한 죄로 정해진 게 되는 거예요. 그 마음이 벌써 동할 적에 되는 거예요. 미로운 여성을 보고, 미로운 남성을 보고 음란한 생각이 조금 품어질 적에 그는 간음을 범함과 같다 하는 것이 주의 법인 것이에요.
‘생각으로도 마음으로도 눈길로도 손끝 하나도 범법하지 않아야 여러분들이 구원에 이르지 구원에 못 이른다.’ 하는 거예요. 그럼 『자유율법대로 심판받을 줄 알고 행하라』는 성경에 있지마는 왜 기성교회 전체가 모르고, 전체가 모르느냐 그거예요. 예수 알고 기록했으면 “그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하고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지금까지 전체가 알아야지요. 알지를 못했어요. 그 목사와 선교사와 장로와 집사와 권사와 교인이 지금까지 아는 자가 없어요. 우리 교인을 통해서밖에 몰라요. 내 신문을 봤든지 또 녹음한 걸 들었든지, 설교를 와서 들었든지 하기 전에는 몰라요. 구원 얻는 방법을 몰라요. 죄를 억만 가지를 계속 지으면서 구원 얻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에요. 죄가 완전히 벗어져야 돼요. 그러나 지금 세상 되어져 가는 걸 보면 “주여” 부르면 그거 다 용서한다 하는.
『믿음으로 되는 거지 행함으로 되는 게 아니다』 (로마 3:28) 그런 것에 결부시켜서 전부 멸망의 자식 만든 거예요. 목사들이 “예배당 문 안에만 들어와도 벌써 주를 믿는 거요, 천당 가기로 정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 얻으리라』 (로마 10:13) 하는 그런 것을 결부시켜 가지고, 하나님 그거 다 용서한다 하는. 마지막 “주여” 하고 부르면 구원 얻는다는 게. 그런 식으로 가르친 게 지금 기성교회 가르침이라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희미한 걸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 머리에 박혀서 힘도 안 쓰는 거지요. 그 악질의 가르침에 죄를 지어도 덮어놓고 구원 얻는다는 거예요. 인간이 죄 안 지을 수 있나, 죄를 지어도 구원 얻는다는 이거에 지금 썩어서 힘을 안 쓴다는 걸 아세요. 그럼 이제 타락된 부흥사가 있어요. 그는 열심히 믿어서 신학교 갔고, 또 목사가 돼 목회 일을 오래 보다가 부흥사로 명성을 날려 많은 교인을 이끌 정도의 부흥사예요. 그러나 타락이 돼 가지고 기생집에 가 술을 먹고 춤을 추고 “아, 이런 좋은 세상을 왜 못 보고 내가 목사 일을 지냈노.” 후회를 하면서 둥당거리면서 춤을 추다가 마지막엔 타락이 돼 기생첩까지 얻고 갔다는 것이에요. 그럼 이제 질문하는 중에 “그럼 예배당 문 안에 갓 들어온 사람도 천당 가기로 정했으면, 명성을 날리던 부흥사는 더 좋은 천당 가기로 정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니까 시인하는 거예요. “그다음 타락이 돼 여지없는 그 부흥사가 구원 얻게끔 책정하는 법이 있습니까?” 질문하니 얼굴이 붉어지고 답변을 못 하는 것이에요. 그런 모순이 어디 있냐 그거예요. 기생집에 가 술을 먹든, 춤을 추든, 뭐 갖은 걸 다 하든, 첩을 얻든, 무슨 짓을 하든 천당 가기로 정해졌다는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요? 그런 구원이 어디 있어요? 그대로 엉터리라는 것을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이에요.
목사들, 선교사들도 교회 2층에서 설교를 잠깐 하는 거예요. 기껏해야 5분, 길어야 10분 정도 하곤 아래층으로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 재즈곡을 틀어 놓고 갖은 춤들을 추며 돌아가고, 그걸로써 교인을 모은다는 정도가 벌써 옛날부터 되는 거예요. 왜? 너무도 타락이 된 고로 재즈곡같이 하면서 굉장히 요란하게 그 춤추며 돌아가는 거예요. 교회의 타락상을 반영시키는 게 되어지는 거예요. 이 정도 됐구나 하는 그게 한심한 상태가 되어지는 거예요.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 세상에 음란이라는 걸 퍼뜨린 것이 예수교가 원조예요. 음탕한 거라는 게, 베드로도 성경에 쓴 게 서로 그대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 (베드로전 5:14) 입맞춤으로 서로 사랑을 하라. 성경에 전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 놓으니까 친구 부인뿐만 아니고 전체 그게 흠이 아닌 게 되지요. 그 어머니가 오면 아들과 그렇게 안고 돌아가도 흠이 아닌 정도가 되지요. 어머니라도 성숙한 아들이면 안 되지 않아요? 너 나 할 것 없이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하는 데는 괜찮다.’ 하는 게 되어서 그토록 타락이 된 거예요. 문란한 게 끝이 없어요. 죄가 이미 있는 것도 씻고 다시는 죄를 안 지어야 되는데, 계속 더러운 죄를 지으면서 천당을 가는 줄 아는 거예요. 이게 예수에게 책임이 있어요. 죄 까닭에 죽게 되었으면 그 죄를 어떻게 씻어야 구원을 얻는가 하는 근본을 알아야 돼요. 가장 요긴한 포인트지요. 예수 자신이 죄 씻는 방법을 몰랐고, 죄가 어떻게 해야 해결되는지 방법을 모른 고로, 온 천하 인생이 지금까지 2,000년 동안 희미한 상태예요. 예수가 구원의 주인공이라고 자처해 가지고 지금까지 2,000년 행세했어요. 온 세상 인간이 거기에 미혹돼서 죄를 자꾸 불리고 구원과는 너무도 동떨어지게 멀어진다 그거예요. 반대 방향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는 거예요. 그 소경이 소경을 가르쳐서 지금 전체가 소경이었던 거예요. 뭐 긴말하지 않을래요. 가장 나쁜 종교는 하나님이 아닌 걸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걸 가지고, 마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대로 믿게 하는 이게 가장 하나님의 원수예요.
가령 비유컨대 세상에 제일 밝은 게 태양이니 하나님이 태양이지요. 그런데 예수가, 새까만 죄덩이가 태양이라고 온 세상에 그 모든 걸 막아버린 거예요. 그걸 벗길 사람이 없어요. 구원의 길은 여기에서 터지지 구원 얻을 길이 없어요. 그런고로 여지없이 새까만 놈이 자기가 하나님의 태양이라 하면서 전 세계가 자기를 바라게 만들어, 새까만 예수라는 마귀가 가로막은 거예요. 이걸 잡아 꺾어 치는 자가 있을 적에야 그게 뚫고 하나님의 태양의 빛이 비치게 돼 있어요. 거기에 전부 향한. 그런고로 거리끼는 자요, 가로막은 자요, 수많은 구원 얻을 자를 구원 못 얻게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같이 구렁텅이 들어간다』(마태 15:14)는 자신이 예수였었다 하는 걸 분명히 알겠죠? 예수는 지옥에 가도 수많은 수를 지옥의 구렁텅이에 쓸어 넣은 고로, 또한 마지막 때에 가장 방해를 먹힌 것이 예수에 속한 것들인 고로, 헐하게 의의 수를, 끝도 없이 수를 늘릴 수 있는 것을 가로막은 것이 예수인 고로 그의 죄의 책임은 그 책임까지 전체를 지고 기막힌 지옥에 떨어질 것이에요. 최고의 지옥에 쓸어 넣을 것을 내가 결정했어요.

제4부 성경과 예수

제1장 창세기의 거짓과 허풍

창세기에는 아담이 잔다는 것보다 더한 웃음거리가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고 있는 아담의 갈빗대를 쑥 뽑았다고 하는 구절이다. 갈빗대를 뽑았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데 그것보다 더한 것은 그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인 해와를 창조했다는 것이다.1) 그런 엉터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하는 창조인가? 아무리 깊이 코를 골며 잔다 하더라도 갈빗대를 뽑으려면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서 뽑아야지, 살을 헤집어 생뼈를 뽑으면 아담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허풍이 어디 있는가? 아담이 깊이 잠을 잔다고 한 것과 또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해와를 만들었다고 창세기에 기록한 것을 보면 천국이 어떤 세계이며 어떤 존재가 사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기록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제4부 성경과 예수

제1장 창세기의 거짓과 허풍

성경에 나오는 창세기의 기록대로라면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한 지 6,000년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수십억 년 전의 물체가 발견되어 분석한 것이 있다. 인간의 과학으로도 분명한 물증이 있는데 성경에서는 지구 창조의 역사가 고작 6,000년이라고 하니 성경의 내용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그렇다면 이 지구를 6,000년 전에 창조했다는 성경의 기록은 참인가, 거짓인가? 분명한 거짓이다. 하나님이 이 지구를 창조한 지는 3조 년이 되었다. 앞으로 과학자들의 두뇌가 점점 발달하면 3조 년 된 물체까지 찾을 수 있게 된다.
만일 3조 년 이상 된 물체가 나온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그 이상 된 물체는 나올 수가 없다.

제3부 자유율법

제4장 자유율법과 신앙촌

자유율법대로 심판받는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자유율법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세상은 죄악이 가득하여 아무리 은혜를 부어 주어도 받은 은혜를 간직하고 자유율법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율법을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은혜를 간직하고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곳이 바로 신앙촌이다. 죄를 멀리하고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은 믿는 사람끼리 모여 사는 신앙촌이 유리한 것이다. 비유컨대 숯덩이에 불을 붙여서 활짝 피워 주어도 그 숯덩이가 피지 않은 젖은 숯덩이 속으로 들어가면 불이 식어서 죽게 되지만, 활짝 피운 숯덩이끼리 따로 모아 피우면 그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은혜 입은 사람들이 모여 은혜의 불길이 붙고 붙으면 은혜의 창파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촌은 복된 땅, 은혜의 창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기성교회에서는 신앙촌을 천년성이라고 비방했으나, 그곳은 천년성이 아니고 신앙촌이다. 신앙촌은 자유율법을 지키고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신앙인의 도시이다. 신앙촌은 은혜 받은 사람들끼리 한곳에 모여서 죄를 멀리함으로 더욱더 깨끗하게 마음을 씻어 구원의 자격을 이루기 위한 곳이다. 성신을 충만히 받으면 그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므로 불평과 불만과 괴로움이 없게 된다. 마음에 천국을 이룬 수가 모이면 1억 명이든 10억 명이든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들 사이에 편을 가르고 쪼개고 파괴하지만 은혜로 마음이 하나가 된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합동하여 유익하게 된다.1) 신앙촌에서는 많은 수가 성신을 받아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촌에 들어가서도 자유율법을 지키지 못한 채 옛 버릇이 그대로 나오고, 혈기는 혈기대로 고집은 고집대로 남아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죄를 멀리하여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제아무리 신앙촌에 들어갔다 해도 구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천부교회에 나와 내 말씀을 듣고 정확한 생활을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정확한 생활이란 티끌만치도 양심에 어긋남이 없는 맑고 깨끗한 심령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이다. 그것은 즉 하나님의 법, 자유율법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구원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자유율법을 지키고 이슬 같은 은혜로 씻음을 받아 마음이 깨끗하고 성결하게 화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