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
망설이지 않고 한 걸음 더

망설이지 않고 한 걸음 더

저는 요즘 추석을 앞두고 간장 선물세트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판매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열심히 영업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예전처럼 주문이 쉽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기보다 직접 발로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영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전단지부터 준비했습니다. 이후 7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전단지를 나눠드리고 샘플도 함께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가 영업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당하게 나서는 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고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밝게 인사하고, 제품을 짧고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상대방이 바쁘다고 하면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5분만 시간 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 짧은 시간이 인연이 되고 판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전단지만 건네기보다 명함을 함께 부착해 정성껏 준비하고, 필요하면 샘플도 함께 드립니다. 고객이 부담 없이 제품을 직접 접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단지를 배부할 때도 무작정 많은 사람에게 주기보다 제품이 필요한 곳을 찾아갑니다. 보험회사에 가면 팀장이나 지점장, 총무처럼 물품을 결정할 수 있는 분들을 먼저 찾아갑니다. 기관도 작은 곳만 찾아가기보다 규모가 있는 곳부터 찾아갑니다. 큰 곳에서 주문을 받으면 또 다른 곳으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주문이 생각만큼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계속 움직이다 보니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간장 가격이 인상된다는 소식을 듣고 신앙촌 간장을 사용하고 있는 고객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신앙촌 간장은 고객들의 부담을 생각해 인상 폭을 크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고객들도 가격이 그 정도면 괜찮다며 이해해 주셨고, 필요한 물량을 미리 주문하는 곳도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큰 주문을 기다리기보다 작은 주문이라도 하나씩 만들어 가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전단지를 배부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체국에 전단지를 두고 왔는데, 나중에 한 업체에서 주문 전화가 왔습니다. 어떻게 알고 전화하셨느냐고 물었더니 우체국 보험에 갔다가 전단지를 보고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간 곳도 아니었는데 전단지 한 장이 다른 곳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때 ‘정말 뿌리는 자가 거두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단지가 어디에서 누구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를 미리 걱정하기보다 꾸준히 알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속한 지역의 소장님께서 직접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영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힘을 얻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이제 그만 배부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소장님께서 여전히 전단지를 배부하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렇게 직접 부딪혀 보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일단 움직이면 작은 기회라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걱정하기보다 먼저 찾아가겠습니다. 안 뿌린 사람은 하나도 거둘 수 없습니다.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뿌리다 보면 또 다른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내일도 힘내서 영업하겠습니다.

인터뷰
“시간이 지나도 부드러운 맛 그대로”…신앙촌 두부를 선택한 이유

“시간이 지나도 부드러운 맛 그대로”…신앙촌 두부를 선택한 이유

‘만희네 가마솥밥’ 박만희 사장…두부 시작으로 간장도 신앙촌 제품 사용 가마솥밥과 갈치요리를 중심으로 손님에게 따뜻한 한 끼 차려내 울산 외곽 두현저수지 인근에 자리한 ‘만희네 가마솥밥’은 가마솥밥과 갈치요리를 중심으로 한 한식당이다. 박만희 사장은 아침 일찍부터 생선을 손질하고 반찬을 준비하며 손님에게 따뜻한 밥상을 내고 있다. 십 년 전부터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해 온 그는 2년 전부터 신앙촌 두부와 간장을 사용하고 있다. 박 사장이 신앙촌 제품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지인의 추천이었다. 평소 손두부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두부가 쉽게 굳고 색이 변하는 점이 아쉬웠다. 이에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이 사용하고 있던 신앙촌 두부를 소개받았다. “기존에 쓰던 손두부는 따뜻한 물에 데워 놓아도 30~40분 정도 지나면 딱딱해지고 색깔도 변했어요. 그런데 신앙촌 두부는 한두 시간이 지나도 부드러운 상태가 유지되는 점이 좋았습니다.” 현재 신앙촌 두부는 된장찌개와 두부김치 등에 사용한다. 특히 손님상에 따뜻하게 데워 내는 두부김치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했다. 두부 자체의 맛과 식감이 중요한 메뉴로 손님이 추가로 리필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박 사장은 “제가 두부를 좋아해서 부쳐 먹거나 구워 먹기도 하는데, 신앙촌 두부는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다”며 “시중의 일반 팩 두부와 비교해도 차이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두부를 사용하면서 간장도 신앙촌 제품으로 바꾸게 됐다. 양조 진간장과 국간장을 조림 양념장과 각종 반찬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다. 조림 양념에는 두 종류의 간장을 적절히 섞어 간을 맞춘다. “양념장을 만들거나 조림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버섯이나 멸치 같은 반찬을 볶을 때도 들어가고요. 여러 재료와 어우러져 맛을 내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 사장은 신앙촌이라는 이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과거에는 간장과 이불 등 신앙촌 제품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제품을 직접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제품 자체의 품질이 뛰어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품을 사용하는 데 다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직접 써보고 제품이 좋은지, 제가 만족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제품을 사용하는 데 있어 원활한 공급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끔 두부가 급히 필요할 때는 담당자가 별도의 물량을 마련해 공급 공백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왔다고 했다. “신앙촌 사장님이 저한테 노력을 보여주신 거잖아요. 그래서 고마웠습니다. 제품도 좋지만 필요한 시기에 공급이 잘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앙촌 제품의 가격에 대해서도 특별히 부담스럽게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원재료와 인건비 등 식당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 함께 오르는 상황에서 제품 가격 역시 일정 부분 오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실제 사용했을 때 만족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이 식당을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손님한테 욕먹지 말자”는 것이다. “돈을 내고 와서 밥을 먹었는데 음식이 짜다, 비싸다, 돈이 아깝다는 말을 듣지 말자는 생각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원산지 표시 등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만족해서 돌아가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가끔 생각나는 식당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식당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그 집 괜찮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게 새로 지은 밥을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만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지금처럼 좋은 품질의 신앙촌 제품을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가 써보고 좋은 제품이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되면 알려주고 싶습니다. 두부나 간장처럼 우리가 늘 먹는 음식은 결국 맛과 품질이 중요하니까요.”

글과 사람들
입사 39주년, 함께 걸어온 구원의 길

입사 39주년, 함께 걸어온 구원의 길

함께 배우고 성장한 입사생들, 감사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 다짐 지난 8월 30일 ‘하나님 권능을 힘입어 죄의 권세 이기네’라는 주제 아래 입사 39주년 예배가 열렸다.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1987년부터 입사생들은 맑은 신앙생활을 위해 신앙촌에서 함께 성장해 왔다. 이날 예배에서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그동안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앞으로도 구원의 소망을 잃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생활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고은미 관장(입사생 담당)은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의미를 되새기며, 구원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는 생활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인간은 죄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신 것은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구원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이슬 같은 은혜로 죄를 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기회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믿음이고, 믿음의 기본이 되는 것은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비치는 거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없으면 교만이 자리 잡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채워 나가는 입사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입사 10주년과 20주년을 맞은 입사생들의 특순과 소감 발표도 있었다. 10주년을 맞은 박수영 씨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쁜 일도,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곁에서 도와주신 많은 분들과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주년을 맞은 김소중 씨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 아닌 만큼 지나온 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입사생의 본분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2부에서는 여성협회 송미애 관장의 특강이 진행됐다. 송 관장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전했다. 이어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입사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시간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기회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고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구원의 길을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입사생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라며 특강을 마무리했다.

10년만에 받은 상

10년만에 받은 상

저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할머니를 따라 절기에만 축복일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축복일에 혼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1년에 3번밖에 오지 않던 저이기에 할머니 없는 축복일이 왠지 어색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축복일의 귀중함과 감사보다는 언니들, 친구들과의 여행이란 것으로만 들떠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런 생각이 머릿 속에 남아있는 채로 […]

하나님께로부터 뻗어나오는 빛앞에 무릎을 꿇고 (허소영 권사/부천교회)

하나님께로부터 뻗어나오는 빛앞에 무릎을 꿇고 (허소영 권사/부천교회)

“이슬성신 은혜야 다 체험들을 하셨을텐데… 받은 은혜는 너무 많은데 다 간직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부천교회 허소영 권사는 중간중간 “말로 다못하죠”하면서 이슬성신 받은 은혜를 증거했다. ●하나님 입에서 성신의 줄기가 나와 하나님께서 옥중에서 나오셔서 오만제단에서 예배를 인도하실 때였습니다. 찬송가 “몸소 받은 고생도 알게 하옵소서~” 찬송을 부르시는데 어찌나 간절히 부르시는지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만 그 때 […]

진주같은 이슬이 내려(김금순 권사/소사교회)

진주같은 이슬이 내려(김금순 권사/소사교회)

1956년 11월 26일 전남 영산포 전도관 개관 집회날이었습니다. 그때 다섯 살이던 딸을 데리고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 중에 딸아이가 허공에 손을 앞으로 내밀어 뭔가를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 맛있게 먹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입에 넣느냐고 했더니 하나님 계신 단상쪽을 가리키며 거기서 하얀 눈이 자기한테로 날아와서 그것을 받아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맛있는데요!”하며 저도 먹어보라며 손을 내밀었지만 저는 […]

향취 가득했던 신앙촌(송선아 학생관장/나주교회)

향취 가득했던 신앙촌(송선아 학생관장/나주교회)

하나님을 깨닫는 순간 말씀 책자에서 과일향의 진한 향취가 맡아져

20대 중반 중학교 동창을 따라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부교회를 다니는 어떤 분에게서 ‘하나님은 존재하신다’고 하신 말씀을 들은 뒤로 늘 다니던 골목에 있던 시온쇼핑 가게의 ‘생명물두부’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작정 들어가 신앙촌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자 정성껏 대답해주시던 권사님은 저에게 신앙신보와 시온인 책자를 주셨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신문을 다 읽는데도 일주일이 […]

매일매일 바쁘게 사는 74세 청춘 사장 (최병주 사장/시온쇼핑 남산매장)

매일매일 바쁘게 사는 74세 청춘 사장 (최병주 사장/시온쇼핑 남산매장)

최병주 사장 / 시온쇼핑 남산매장

“온 집안이 교회에 다니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교회 사택에서 살 정도로 독실한 장로교 집안에서 1966년에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마침 집을 구한 데가 바로 이만제단 근처였어요.” 이만제단 옆이라도 서울로 이사를 오기 전 친정 아버지에게 들은 전도관은 이단이다라는 말이 귀에 쟁쟁했었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늘 성경을 읽었던 젊은 최병주 집사에게 전도관 다니는 박 집사란 분이 찾아왔다. “그건 신앙촌에서 […]

하나님 일 하면서 삶이 즐거워졌습니다 (김윤임 권사/진해교회)

하나님 일 하면서 삶이 즐거워졌습니다 (김윤임 권사/진해교회)

김윤임 권사 / 진해교회

1980년대 초, 진해에 이사를 오게 된 김윤임 권사는 전도관에 다니는 어떤 교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돼!”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진 김 권사는 바로 진해교회에 찾아갔다. 몇 년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던 김 권사가 자던 잠을 깨는 순간이었다. “그 때 신앙의 방향을 다시 잡았어요.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한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 죄송했고 이렇게 […]

내가 하나님을 느끼던 순간(이달용 관장 / 여수교회)

내가 하나님을 느끼던 순간(이달용 관장 / 여수교회)

크신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깨달아

나는 1955년 7월 한강백사장 집회부터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하였다. 집회 첫날부터 기성교회 집회와는 100% 달랐다. ‘마음의 문을 열라’는 하나님의 간곡한 호소가 나의 심금을 울렸다. 예배당 안에만 들어오면 구원받았다고 하는 목사들의 설교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기도 목표를 ‘저 분이 진짜 하나님인지를 알아야겠다’는 데 두었다. 하나님을 따르는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의 기도는 더 간절해졌다.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어주시고 […]

하늘의 평안 (최양단 권사/광의교회)

하늘의 평안 (최양단 권사/광의교회)

여경찰이었던 큰 언니가 어느 날 해남인 고향에 내려와 식구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이만제단에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기사이적을 보았으니 앞으로 전도관에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장로교를 다니셨던 어머니는 언니의 말에 전도관 예배에 참석을 하였고 그 뒤로 집안의 벽과 마루를 다 터서 예배실을 만들었습니다. 이슬성신이 내리고 생명물로 씻긴 시신이 백합화같이 뽀얗고 아름답게 피어지는 놀라운 하나님 […]

'하나님 나좀 살려달라는 소리에 귀가 따가우셨대요' (김영순 권사/전주교회)

'하나님 나좀 살려달라는 소리에 귀가 따가우셨대요' (김영순 권사/전주교회)

김영순 권사 / 천부교 전주교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북받쳐요.” 올해 80세인 김영순 권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일제 치하 처녀들을 정신대로 끌고 간다는 소리에 부모님이 산골 마을의 청년에게 일찍 시집을 보냈다. 6·25전쟁이 나고 남편은 군에 입대해 5년의 군대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돌아온 남편은 정상이 아니었다. 산골에서만 살던 남편은 전쟁중에 사람을 죽이고 죽는 광경을 보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인지 정신이상자가 되어있었다. 집안 살림을 내던지고 […]

'바다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해주심을 나중에 깨달아' (김윤자 집사 / 기장신앙촌 소비조합)

'바다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해주심을 나중에 깨달아' (김윤자 집사 / 기장신앙촌 소비조합)

김윤자 집사 / 기장신앙촌 소비조합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면 궁항리. 노 젓는 배로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에 있던 소랑도에 전도관 기도처가 있었습니다. 수요일과 일요일이면 집의 배를 타고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는 걸 핍박하셨던 부모님은 예배가 있는 날만 되면 더 많은 일을 시키셨고, 그럼 저는 부지런히 시키신 일을 다 해놓고 전도관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예배는 시골이라 일을 마치고 예배를 드리느라고 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