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구원과 심판, 제7부 행함의 종교

나는 천국을 창조할 때 어떻게 하면 영원무궁토록 살아도 지루감이 없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장 깊이 생각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도 권태증이 없고 눈 찌푸릴 일이 전혀 없이 계속 즐겁게 살게 하기 위하여 천국을 재창조되는 세계로 설계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점점 늙어져서 미워지지만 천국에서는 얼굴이 재창조가 되면서 점점 더 아름답게 화한다. 변하는 조건이 이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세계는 아름답게 화하여 나가는 변함은 있으되 추하게 되는 변함은 없고 퇴보하는 변함은 없다.
2차 천국에서는 인간이 1초에 144번 재창조되어 점점 더 아름답게 변하고 그에 맞게 2차 천국의 모든 것이 재창조된다.
눈이 아름답게 바뀜에 따라 아름다움을 보는 시각(視覺)의 도수도 1초에 144번 고도로 올라가게 된다. 시각의 도수가 올라감에 따라 시각의 대상이 되는 모든 환경도 1초에 144번 새롭게 재창조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보화나 기화요초라 해도 어느 정도 지나면 싫증이 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천태만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이다.
천국에는 이 세상의 은하수와 같은 은빛 바다가 있는데 그 색깔이 1초에 144번 재창조되어 더욱 아름답게 변한다.
코가 재창조되어 후각(嗅覺)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므로 한 번 맡은 향기가 반복되어 맡아지는 법이 없고 영원토록 계속 바뀌게 된다. 하나님이 우주의 향기를 1초에 144번 새로운 향기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또한 미각(味覺)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의 양식이 계속 공급되는데 그 모양과 맛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된다.
귀가 새롭게 재창조되어 청각(聽覺)의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에 음악도 거기에 맞추어 재창조가 된다. 한 번 들었던 음악은 다시 들을 수 없고 항상 새로운 음악이 울리는 것이다.
천국은 음악의 세계로 1초라도 음악이 끊어지는 때가 없다. 천국에서는 슬픈 곡은 전혀 없으며 은은하고 고상한 음악이 계속 울리는데 그 음악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것이다. 천국에서 1억 명이 합창을 하면 이 세상의 4부 합창이 아니라 1억 명의 음이 전부 다르게 나오는 1억부 합창이 된다. 또한 1억 명이면 1억 명이 연주하는 악기가 전부 다른데 그것이 서로 조화되어 기가 막힌 화음을 이루게 된다.
천국의 향기는 음악에 따라서 달라지고, 천국의 은빛 바다는 울리는 음악에 맞춰 기막힌 물결이 치는 것이다.
천국은 모든 것이 재창조되어 기쁨과 즐거움이 끝없이 상승되는 세계이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도 지루감이 없는 근본 원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에 하나라도 결함이 있으면 천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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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2023년 이슬성신절 말씀

이제 지금까지 그 인생을 창조한 지가 6천 년이다 하는, 고고학자들이 분석해서 발표한 연한을 봐도 6천 년인 건 허풍이 분명하지요?
창세기 1장에 기록된 건 마지막 날에 인간이 창조가 됐다 하는, 만물의 영장이 창조가 된. 그건 바로 그전에는 인간이 없는 것 같이 기록이 되고 그 둘이 시작 돼가지고 인생이라는 것이 퍼진 것 같이 했지만 그게 거짓말이죠.

그럼 분명히 맞지 않는 그거에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먹어서 이제 죽게 돼 가지고 아들을 낳았다는 게 처음에 맏아들을 가인을 낳았어요. 그다음에 둘째 아들을 아벨을 낳았어요. 그럼 그 해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그걸로 바로 아담 해와의 맏아들이 동생을 죽였어요. 그럼 동생을 죽였는데 가인, 사람이 그 이외에 없게 돼 있는데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많은 수가 자기를 쳐 죽일까 봐 두려워했다는 그거면 인간을 지었다는 창세기 1장에 문맥이 하나도 맞지 않게끔 되어진.

둘 밖에 없다는 인간이 둘만 있는 게 아니고 끝없이 있는 게, 그 전부터 인간의 많은 수가 흘러내려오는 걸 조물주가 아니면, 창조주가 아니면 그걸 옳은지 그른지 밝혀낼 존재가 없어. 진리는 거짓이 없는, 가감이 없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게 없는. 선후가 틀리는 게 없다 그거야.
세상 인간이 쓴 집필한 책이라도 1장이면 1페이지면 1페이지에 있어서 말이 문맥이 안 맞는 게 없어. 뭐이나 근본이 틀리면 전부 틀리는 거야.

그런고로 쇼하는 그 글을 쓰는, 집필을 하는 사람도 그 문맥이 하나 틀리면 그 쇼가 틀려지는 그거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볼 적에 “저게 완전히 틀렸네” 이렇게 이런 정도가 되는데 문헌이면 문헌에 첫 페이지에 대개 줄거리를 쓰는 총론같이 이렇게 쓰는 그거에 그게 원칙과 근본이 거기가 틀려지면 그 책 한 권 전체가 필요 없지. 그러면 창세기에 뭐 6,000년이라는 이건, 허풍 중의 허풍인 것을 이젠 알고도 다 남지요. 인간의 과학적으로도 그 연한이 6,000년이 안 맞는 거예요.

그럼 이제 3조 년 가깝다 하는 걸 말한. 그걸 내가 창조를 하고 내가 지금 운행을 하고 있고 가열을 하고 있고 한 고로 내가 아는 거야.

제7부 행함의 종교

제3장 말씀대로 사는 생활, 제4장 하나님과 인간의 합동작전

구원을 얻으려면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죄 짓는 것은 지옥의 근원이요, 지옥에 갈 조건이기 때문이다.
지옥의 근원인 죄를 지적하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구원을 주는 것이 하나님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온 목적이다.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살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죄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 그것 하나만 있어도 구원을 얻을 길이 없다. 성경에 『온 율법을 다 지키다가도 하나만 범하면 모두 범함이 되느니라』¹⁾라고 한 것과 같이 자유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더라도 하나만 범하면 모두 범한 것이 된다.
10만 개의 화살이 쏟아지는 속에서 방패로 그 화살을 다 막았다고 하더라도 순간 들어오는 화살 하나를 막지 못하면 쓰러져 죽는 것과 같이, 마음과 생각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죄를 이기지 못하면 결국 자유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서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는 이미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있는 힘을 다해 노력을 하게 되어 있다.
자유율법을 지키며 은혜를 간구하는 자에게는 내가 은혜를 계속 보내 주게 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첫째 조건은 죽어도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제7부 행함의 종교

제2장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찬송가 532장 ‘천국의 거룩한 집’
보시오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있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있겠네 천국에는 만 가지, 백만 가지, 억만 가지가 모두 즐거움뿐이다. 천국은 이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고 그 배율을 논할 수도 없는 즐거움의 세계인 것이다.
찬송가 269장 ‘하나님과 맺은 언약’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내 주와 맺은 언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는 자를 구원해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꼭 지켜라. 그 세계에서 영원토록 살려면 이 말씀을 어기면 안 된다. 생각으로도 범법하지 않고 꼭 지켜서 그 세계에 가야 된다.”라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다.
세상에서는 글로 써서 서약을 하는데, 나는 말로써 언약(言約)을 하는 것이다.
나는 한번 약속을 하면 영원토록 변치 않는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영원히 불변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100퍼센트 순응하는 자에게 그 언약이 영원히 불변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지키는 자는 천국에 가게 되지만, 말씀을 어기고 자꾸 죄를 짓는 자는 구원을 주려야 줄 수가 없다.
이 찬송은 하나님과 언약을 하였으므로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내가 하나님을 따라가서 기필코 구원을 얻겠습니다.’라고 하는 찬송이다.
그 아름다운 세계에 가는 구원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구원을 얻으려면 그 목표를 향해 뛰어야 한다.
찬송가 566장 ‘인생의 추수’
추수한 바 모든 알곡 천국 창에 들인 후
주가 베푼 연회석에 우리 들어가겠네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도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이제 남은 것은 심판 하나밖에 없다. 지금 나는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
이 찬송에서 추수한다는 것은 곡식을 추수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추수한다는 말이다.
타작마당에서 키로 곡식을 까부르듯이 인생을 추수해서 쭉정이는 날려 버리고 알곡은 모아서 천국 창고에 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천국 창고에 들이는 알곡과 같이 구원을 얻으려면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제7부 행함의 종교

제2장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찬송가 64장 ‘나의 기쁨 되신 주’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찬송가 64장은 초창기부터 내가 늘 부르던 찬송이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라는 찬송이 바로 내 찬송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기쁨의 원천(源泉)이요, 즐거움의 근원(根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을 충만히 주시옵소서.’ 하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를 충만히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 그 세 가지는 모두 다 하나다.
하나님의 신이 충만히 거하면 지혜도 총명도 권능도 능력도 모든 것이 다 같이 부여된다.
그러므로 성신을 충만히 받으면 만 가지가 해결되는 것이다.
찬송가 451장 ‘하나님은 나의 구주’
주 안에 행복 누림으로
마음속 풍랑이 안정되니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성신의 은혜를 받으면 복잡다단하던 그 마음의 풍랑이 모두 안정이 되는 것이다.
‘내가 주 안에 있고 주가 내 안에 있어 그 행복을 누림으로 마음속 풍랑이 안정되니 나와 이 세상은 다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그 뜻을 생각하고 불러야 한다.
찬송가 335장 ‘성신의 단비’
빈 들의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하나님 허락한 성신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신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성신의 은혜를 구하는 데는 찬송가 335장 이상이 없다. 빈 들의 마른 풀이 단비를 맞아 새롭게 피어나는 것과 같이 새생명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새생명은 성신의 단비로 받는 것이다. 성신이 내리면 새생명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신의 단비로 새생명 주옵소서.’ 하는 것이다.
찬송가 428장 ‘이 죄인을 완전케 하심’
이 죄인을 완전케 하옵시고
또 맘속에 거하심 원합니다
죄 가운데 빠졌던 몸과 맘을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옵소서
눈보다 더욱 희어지게
곧 씻어서 정결케 하옵소서 이 찬송은 ‘은혜를 주시옵소서. 내 마음을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시옵소서.’ 하며 노래로써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이다. 『마음이 성결한 자라야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오』¹⁾라고 한 것과 같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그와 같이 성결한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죄가 완전히 소멸되어야 한다.
‘이 죄인을 완전케 하옵시고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시옵소서.’ 이것이 귀한 찬송이다.
찬송가 453장 ‘만 가지 은혜’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만 가지 은혜’라는 것이 바로 여기에 부합된다.
나는 지구의 열도를 조절하여 인간이 먹는 식물이 자라도록 하고, 인간의 심장에도 권능을 가하여 인간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은혜를 내려서 죄를 씻어 주는 일까지 하고 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만 가지도 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이 보호하는 손길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눈만 뜨면 염불을 외우는 사람도 정말로 위험한 지경에 이르면 무의식중에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다.
중이 한겨울 강 위의 살얼음판을 건너가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면 부처를 의지하여 목탁을 치고 염불을 외우며 가게 된다. 가운데로 가다가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나면 불안한 마음에 더 세게 목탁을 치고 더 빨리 염불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 얼음이 깨지면서 물에 빠지는 순간, 목탁을 내던지고 하나님을 부르며 살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위급한 순간에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를 창조하고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잠재의식이 본능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 찬송을 불러 보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7부 행함의 종교

제1장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 제2장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내가 기도의 선물을 하나 주려고 한다.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와 미소를 주시옵소서.’ 이 기도문을 지속하면 막혔던 마음이 열리고 진심으로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연결된다. 내가 준 이 기도문은 간단하지만 아주 귀한 것이다. 언제든지 중심으로 구하는 때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 이 세 가지가 모두 부여된다.
미소를 구하는 기도문을 내가 여러분들에게 주었다. 사람이 진실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어떤 값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은혜 안에 들어서 즐거움이 은근한 미소로 나타나면 그것 이상 더 귀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마음을 부드럽게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떤 일에도 굳은 표정을 짓지 말아야 한다. 미소를 짓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교육이다. 영원한 세계에 가고자 하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미소 짓기를 노력해야 한다. 전도를 할 때에도 미소를 지어야 한다. 사람을 이끄는 첫 번째가 미소다. 진정으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전해 주어야 하는데 나에게 기쁨이 있어야 기쁨을 나눠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기쁨의 신이다. 마음속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즐거움이 솟아나면 그 속에 천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 하리니 네 마음속에 있다』¹⁾라고 한 대로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천국이 마음속에 이루어진다. 기도문을 계속해 보라. 계속해서 은혜가 연결되는 사람에게는 불안한 마음이 점령하지 못한다. 은혜를 받아 나의 기쁨 되신 주께서 충만히 거하면 흘러넘치는 기쁨이 얼굴에 나타난다.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긴 기도가 필요 없다. 부복하여 기도할 수 없는 때에도 기도문으로 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게 조용히 할 수 있고 입을 움직이지 않고 생각으로도 할 수 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가 젖고 젖어서 꿈속에서도 계속되어 24시간 지속될 수 있다면 그는 죄에서 완전히 떠나 의인의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제7부 행함의 종교

제1장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

신앙이란 추상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 곧 성신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간직하여 구원을 얻느냐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성신의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에 부합하는 생활, 즉 자유율법을 지켜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천부교는 성신이 임하는 체험의 종교요, 성신을 받은 다음에는 자유율법을 지키는 행함의 종교다.
이와 같이 행함의 종교라는 것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성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제6부 구원과 심판

제5장 하나님의 심판, 제6장 영원한 천국

하나님이 마지막에 인간을 지옥에 보내는 것만이 심판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상을 하나하나 전부 살펴서 측정하고 있는데 그것부터가 심판이다. 하나님이 살피고 측정한 죄상이 모아져서 마지막에 지옥의 형량을 결정짓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심판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각 사람마다 하나님의 분신이 셋씩 배치되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과 행동을 전부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생각을 사람에게는 가릴 수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숨기거나 가릴 수 없다.
그러나 각 사람의 모든 죄를 보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오직 마지막 심판 때만 각 사람의 죄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다. 성경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난다』¹⁾라고 한 대로 심판 때는 모든 죄가 가릴 수 없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가 어느 때는 이런 생각을 가졌고, 어느 때는 이런 마음으로 죄를 지었다 하는 것을 심판해서 죄의 형량을 정하는 것이다. 심판하는 날에는 누구든지 용서가 없고 친불친(親不親)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분신이 인간의 죄를 계속 측정하므로 인간은 매 순간마다 심판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1초 1초 측정한 죄상이 모아져서 마지막 심판 때 지옥의 형량이 정해지므로 지금 현재의 생활이 지옥이냐 구원이냐를 결정하게 된다.

제6부 구원과 심판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한 이래 3조 년 동안 평균 5,000년마다 인간을 심판하였다.
이 지구는 좁아서 평균 5,000년이면 한계점에 이르러 심판을 하지 않으면 인간이 더 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한 번씩 지구를 심판할 때마다 몇 명만 넘어오게 하고 나머지는 전멸 상태가 되게 하였다. 노아 심판 때는 여덟 명이 넘어오게 하였고 그전 심판 때는 네 명이 넘어오게 하였다.
노아 때는 하나님이 물로 심판을 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할 것을 알리고 방주를 지을 것을 명하여 120년 후에 방주가 완성되자 40일 밤낮으로 비가 쏟아지게 하여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노아가 120년에 걸쳐 전도와 경고를 했어도 그것을 무시했던 사람들은 마침내 홍수가 시작되자 모두 산으로 피난했다. 그러나 물이 점점 차올라 설 땅이 없어지자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난투극을 벌이고, 양식이 없어 굶어 죽는 비참한 광경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결국 가장 높은 산까지 물에 잠겨 육지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자 노아의 여덟 식구가 탄 방주만이 떠 있게 되었다.
그런데 ‘40일 정도 폭우가 쏟아진다고 어떻게 세상의 제일 높은 산까지 다 잠겨서 육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강우량과 비가 내리는 시간, 땅의 면적과 물의 유속을 계산해 보면 40일 동안 폭우가 아무리 쏟아져도 지구가 모두 물에 잠길 수는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온 세상이 물에 다 잠기기까지는 하늘에서 내린 비의 양보다는 땅에서 흙이 매몰돼 올라온 물이 더 많았다. 40일간 쏟아진 폭우로 산 둘레의 흙이 무너져 강과 바다를 메워 물이 산꼭대기까지 차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또 폭우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노아의 방주가 어떻게 그 물에 부서지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지금과 같이 육지가 있어도 바다의 파도에 배가 파선하는데 노아의 홍수 때는 산이란 산은 다 잠겨 버렸고 거치는 데가 없이 지구 전체가 모두 물바다로 변했다.
그때 바람이 불면서 치는 파도의 크기란 태평양의 파도보다 10배, 20배의 유(類)가 아니었다. 그런 속에서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므로 노아의 방주는 유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시일이 지나서 노아가 방주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놓아 주니 감람나무 이파리를 물고 돌아와서 육지가 드러난 것을 알게 되었다.¹⁾
그때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을 물고 온 것은 세상을 구원할 존재는 감람나무인 것을 상징한 것이다.

천체를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2022년 추수감사절 방영 말씀

오늘은 대개 들어 보지 못한 사람도 있는 고로. 워낙 이제 초단계에 처음 시작한 것도 인간이 이해를 못 하는. 또 차원이 워낙 높은 걸 계속 말해 오던 중에, 간단히 오늘 말씀할래요.
그럼 이제 요거부터 알아야 돼. 천체에 대한 조금이라도 윤곽을 알아야 돼. 알아야 되겠기에 오늘 말해 주는 거야.

이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6,000년을 한계로 잡았지만, 6,000년이라는 건, 그 과학자들이 뭐 한, 그 고고학적으로 뭐 나온 물질 가지고도 대개가 몇 백만 년 말하는 건 많아. 그 짐승인지 뭐인지, 어떤 동물인지 알지 못하는 게 그냥 굉장히 큰, 고래 뼈다귀 유가 아니게 큰 것, 그건 어느 해에 있었던가 하는 건 조물주밖에는 알지 못해. 그 연한은 굉장히 길어.

그럼 그런 정도에 그 천체를 전체 그대로 운행하고 있는 중에 제일 작은 지구덩이 하나 운행하는 것, 오늘 처음 듣는 사람 때문에 잠깐만 말할래.
그저 보통 자연적으로 곡식이 되는 줄 알지만 요 열도 조정, 지구 하나에 대한, 가열에 대한 것만 해도 하나님의 신의 수는 끝없이 움직여 그대로 그걸 운행을 하고 있어.
지구를 하나 가열하는 데는, 지금 이 안에 도수의 차이라는 건 가짓수를 분별하기가 어려워. 어떤 암질은 1m 두께 위에도 아무리 가열을 해도 찬 게 그대로 있지, 이 열도가 올라오지 않는 암석이 많아. 암석의 조직이 수억 가지가 돼 있는 게 있는. 가령 미립자의 끝도 없는 분지 1이야. 미립자의 또 미립자의 미립자, 그걸 갖다가 1,000번이나 한 그 작은 물질까지 있어. 그게 전부 온도 통과하는 게 전부 달라, 요만한 바위 하나에도 달라. 그 암층이 전체가 다르고 같은 암석 같은데도, 인간이 보기엔 같은 암석 같은데도, 거기에 원소를 모르니까. 그게 전부 층이 달라. 그 계산이 전부 돼야 되게 돼 있어. 지구 밑의 층까지.

바람에 대한 그것이 1초에도 그 온도가 꼭 균일하질 않아.
왜? 공기 안에도 그 원소가 끝없는 종류가 섞여 있어. 공기, 그 해서 1입방밀리의 그 100만 분지 1 사이의 이 공기 속에도 원소의 종류가 전부 달라 놔서 열풍이 같이 지나간다 해도 열풍이 그렇게 100만 분지 1입방밀리 정도에도 열풍의 온도가 전부 틀려.
그 열풍이면 열풍의 온도가 어떻게 차이 되는 그 계산이 전체 다 돼 가지고야 그 지열과 맞춰 가지고, 요게 몇 분 몇 초 후에 어떻게 지나가고 어떤 게 지나가고 그게 전체 계산이 돼 가지고 꼭 풀뿌리가 마르지도 않고 냉하지도 않을 정도에 온도를 맞춰 주기 때문에 식물이 돼서 인간이 먹지, 한 알이라도 입에 넣을 게 없어.
그 정도만 말해 둘래. 그거 뭐 하려면 끝이 없어. 그 정도만 해도 이제 ‘지구 하나 운행하는 것도 기도 막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어.

제6부 구원과 심판

제3장 구원의 특혜, 제4장 인간의 행함과 구원의 조건

성경의 인물 중에서 믿음이라는 것을 찾으려면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들은 대쪽같이 강직한 사람들로서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신앙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다. 왕이 만든 우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진다는 왕의 법령이 공포되었지만 그들은 왕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맹렬한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고 우리를 또 왕의 손에서 건져 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하나님이 건져 내시지 않는다 하여도 우상에게 결코 절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며 풀무불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왕은 대로하여 풀무불을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풀무불에 던지게 하였다. 풀무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그들을 불에 던지려는 군사가 불에 타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결박한 것이 풀려 조금도 다치지 않고 불 가운데로 다니는 모양을 보고 왕은 놀란 것이다. 왕이 그들에게 나오라 하여 모습을 살펴보니, 풀무불에서 그들은 머리털 하나 그을린 곳이 없고 불탄 냄새조차도 없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한 것이다.
또 다니엘은 방백을 다스리는 관료로 왕의 신임을 받았으며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인물이었다.
왕의 모사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모함할 계획을 꾸며 왕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면 사자굴에 던진다는 금령(禁令)을 내리게 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하시고자 하면 하실 줄 알고 믿은 것이다.
금령을 어긴 죄로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고 입구를 큰 돌로 봉해 버렸지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뭇 사자의 입을 봉하여 다니엘을 해치지 못하게 하였다.
이튿날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끌어내 보니 그 몸이 조금도 상한 데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란 이런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여기서 나온다.
이것은 진실한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마지막 때 강하게 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 시대에 시도해서 한 일이다.
그들은 최고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 또한 권능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해 줬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그들은 감람나무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자신들이 마귀의 구성체인 것과 그 구성체가 바뀌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알 길이 없었다. 또한 감람나무가 내리는 이슬성신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썩을 육신의 구성체를 이슬성신으로 완전히 바꿔서 영원히 살게 해 주는 그 조건에는 동참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들에게 마귀의 구성체가 바뀌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면 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하여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이 바뀌어 구원을 얻는 것은 그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인간의 구성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는 감람나무 하나님의 권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감람나무가 내리는 이슬성신으로 죄를 씻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태어나 감람나무를 만난 자와 이슬성신의 은혜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 감람나무를 따르고 그 은혜를 받는 자들은 성경 중에 최고로 하나님을 믿었던 인물들보다도 더 앞서는 조건에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