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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제단(10)  특전대⑤.끝

이만 제단(10) 특전대⑤.끝

특전대 전도정신 오늘날에 되살려야

서울중앙전도관의 특전대는 밴드부, 판매부, 전도부, 영사부로 편성되어 경인지역과 지방 순회 전도 활동을 펴고 있었다. 당시의 특전대 소속 전도부는 주로 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서울 명문 고등학교 재학생들이 대부분으로 6·25 전쟁을 치른 후여서 나이가 10대에서 20대 후반까지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 들이었다. 이들은 특전대 전용버스로 이동하면서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버스 옆에는 신앙신보의 신문 명칭이 쓰여 있었다. 이 버스가 […]

이만 제단(9) 특전대④

이만 제단(9) 특전대④

서울을 비롯해 전국 지방 전도관에도 조직돼

특전대는 서울과 지방에서 기성교회 목사들과 진리토론을 하며 그들의 코를 눌러주고 하나님의 순회일정에 맞추어 노방전도와 영화상영을 하였을 뿐 아니라 교회 안내 일도 도맡아서 하였다. 이만제단에서 처음 조직되었던 특전대는 각 지방 전도관에도 모두 조직되어 체계적인 전도활동에 매진하였다. “그때 이만 제단에 가려면 영등포에서 전차를 타고 노량진까지 가서 한강의 고무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고무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

이만 제단(8) 특전대③

이만 제단(8) 특전대③

나팔불고 노방전도하며 감람나무를 증거해

특전대의 또 다른 전도 활동은 하나님의 지방 순회에 앞서 순회 예정 도시에 가서 밴드를 불고 북을 치며 노방 전도를 하고 밤에는 영사기를 돌려 하나님과 전도관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특전대의 노방전도와 전도영화 상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신기한 광경을 지켜보았으며 그 효과는 매우 컸다. 그러나 당시의 영사기에는 녹음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영화를 상영할 때는 화면을 […]

이만 제단(7) 특전대②

이만 제단(7) 특전대②

한경직 목사에게 성경 토론 신청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하다가 매를 맞고 핍박을 받을수록 특전대의 사기는 올라갔다. 노량진 징로교회에서 심각한 폭행을 당하였지만 특전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다음날 수십명이 영락교회로 한경직 목사를 찾아갔다. 한경직 목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여 2천 여명 은혜 받은 목사들이 하루아침에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전도관 특전대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한경직 목사는 어디로 피해 버리고 한경직목사를 만나지 못한 […]

이만 제단(6) 특전대①

이만 제단(6) 특전대①

젊은이들‘특별전도대’를 조직

서울중앙전도관이 준공된 후 청년들을 중심으로 특별전도대가 조직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였다. 처음에는 비진리(非眞理)를 무너뜨리는 ‘특공대’라 하였으나 그 명칭이 너무 공격적이라 하여 특별전도대, 줄여서 특전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무튼 특전대는 이 땅에 감람나무 나타나셨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조직이 되었다. 1955년 천막집회 때 이슬성신을 부어주시기만 할 때는 그것이 무슨 은혜인지 알지는 못하고 모두들 기뻐서 날뛰었으나 1956년 구제단을 거쳐 1957년 […]

이만 제단(5) 언론의 보도

이만 제단(5) 언론의 보도

성조지에서 서울중앙전도관의 위용을 소개

서울중앙전도관 신축 예배에서 하나님의 안수하심으로 제1회 장로 장립식이 있었음은 기보한 바 있거니와 당시 장로 장립을 받은 사람들의 면면을 계속하여 살펴보고 몇몇 언론의 보도도 보기로 한다. 장병림 교수(1918~ 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장모의 권유로 제단에 나오게 되었는데 새벽제단도 열심히 출석했으며 안수와 안찰을 받고 향취와 각종 은혜 체험을 하였다. 제단에서는 항상 온유한 태도와 밝은 미소로 주위 사람들에게 […]

이만 제단(4) 준공과 장로 장립식

이만 제단(4) 준공과 장로 장립식

서울중앙전도관 웅자 드러내다

1957년 4월 서울중앙전도관은 완공되어 마포구 청암동 언덕에 그 웅장한 모습(사진)을 드러내고 역사적인 개관집회를 갖게 되었다. 장충체육관도 없고 세종문화회관도 없던 시절에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중앙전도관의 준공은 교회 건물로는 물론이요 일반 건축물로서도 국내 최대를 자랑할 만 하였고 내외의 주목과 경탄을 자아내었다. 외부의 어떤 도움도 없이 착공한지 1년도 채 안된 초 단기간에 완공된 서울중앙전도관은 전도관을 이단이라고 몰아붙이면서 […]

이만 제단(3)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

이만 제단(3)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

새벽부터 밤까지 지방순회 하시던 하나님 틈틈이 공사 둘러보시고 은혜 주셔

이만 제단이 건축되고 있던 청암동 ‘택한정산’은 산 위에 ‘택한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 진 이름이다. 한강을 굽어보는 명당으로서 근처에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던 곳이었다. 용산이 구불구불 뻗어 내려가다가 한강 쪽으로 튀어나온 듯한 지형을 갖고 있었으므로 용머리라고도 칭하였는데 이는 사람들이 용산의 구불구불한 산줄기를 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 일대는 옛적에 도원경(桃源境) 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복숭아 꽃이 많았다고 […]

이만 제단(2) 착공과 공사 진행

이만 제단(2) 착공과 공사 진행

수많은 사람들 장소없어 우선 벽만 쌓고 예배

1956년 7월 천부교 최초의 초대형 교회인 이만 제단 건축 공사가 드디어 서울시 마포구 청암동 ‘택한정산’에서 시작되었다. 6·25 전쟁 이후의 피폐한 경제상황 속에서 당시의 기성교회에서는 선교사들의 원조를 받아 조그만 교회 하나를 짓는데도 몇 년이 가도록 완성을 못하는 실정이었다. 동양 최대의 교회인 이만 제단은 우선 그 규모에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으로서 오직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

이만 제단(1) 착공과 심령 대 부흥회

이만 제단(1) 착공과 심령 대 부흥회

원효로 전도관은 밀려오는 인파 감당하지 못해

기성교회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여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으나 성신의 역사는 더욱 놀라운 속도로 퍼져 가고 있었다. 몇 십 명이 모여 원효로 전도관을 시작한지 몇 개월이 안 되어 전국적으로 수 백 곳의 전도관이 세워지고 신자들은 수십 만 명으로 늘어났다. 원효로 전도관은 더 이상 밀려드는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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