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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제단(4) 준공과 장로 장립식

이만 제단(4) 준공과 장로 장립식

서울중앙전도관 웅자 드러내다

1957년 4월 서울중앙전도관은 완공되어 마포구 청암동 언덕에 그 웅장한 모습(사진)을 드러내고 역사적인 개관집회를 갖게 되었다. 장충체육관도 없고 세종문화회관도 없던 시절에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중앙전도관의 준공은 교회 건물로는 물론이요 일반 건축물로서도 국내 최대를 자랑할 만 하였고 내외의 주목과 경탄을 자아내었다. 외부의 어떤 도움도 없이 착공한지 1년도 채 안된 초 단기간에 완공된 서울중앙전도관은 전도관을 이단이라고 몰아붙이면서 […]

이만 제단(3)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

이만 제단(3)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

새벽부터 밤까지 지방순회 하시던 하나님 틈틈이 공사 둘러보시고 은혜 주셔

이만 제단이 건축되고 있던 청암동 ‘택한정산’은 산 위에 ‘택한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 진 이름이다. 한강을 굽어보는 명당으로서 근처에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던 곳이었다. 용산이 구불구불 뻗어 내려가다가 한강 쪽으로 튀어나온 듯한 지형을 갖고 있었으므로 용머리라고도 칭하였는데 이는 사람들이 용산의 구불구불한 산줄기를 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 일대는 옛적에 도원경(桃源境) 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복숭아 꽃이 많았다고 […]

이만 제단(2) 착공과 공사 진행

이만 제단(2) 착공과 공사 진행

수많은 사람들 장소없어 우선 벽만 쌓고 예배

1956년 7월 천부교 최초의 초대형 교회인 이만 제단 건축 공사가 드디어 서울시 마포구 청암동 ‘택한정산’에서 시작되었다. 6·25 전쟁 이후의 피폐한 경제상황 속에서 당시의 기성교회에서는 선교사들의 원조를 받아 조그만 교회 하나를 짓는데도 몇 년이 가도록 완성을 못하는 실정이었다. 동양 최대의 교회인 이만 제단은 우선 그 규모에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으로서 오직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

이만 제단(1) 착공과 심령 대 부흥회

이만 제단(1) 착공과 심령 대 부흥회

원효로 전도관은 밀려오는 인파 감당하지 못해

기성교회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여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으나 성신의 역사는 더욱 놀라운 속도로 퍼져 가고 있었다. 몇 십 명이 모여 원효로 전도관을 시작한지 몇 개월이 안 되어 전국적으로 수 백 곳의 전도관이 세워지고 신자들은 수십 만 명으로 늘어났다. 원효로 전도관은 더 이상 밀려드는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5)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5)

2만명 수용할 제단 건축을 준비

서울전도관 6개월만에 장년 4천여명으로 늘어 2만명 수용할 제단 건축을 준비 1956년 7월7일자 신앙신보는 1면 기사에서 1956년 당시의 원효로 전도관의 발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심야의 등화와 같은 역할로 교계에 나타난 초교파적인 하나님의 제단 서울 전도관은 창설 이래 일로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벌써 4천여명의 교우가 운집하고 있다. 앞으로의 증가될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바 이에 […]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4)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4)

친히 모든 교인 가정을 심방하심

서울전도관 임원동반 서울 각 구에서 연합예배, 친히 모든 교인 가정을 심방하심. 1956년 3월 11일자 신앙신보는 원효로 전도관의 초창기 모습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원효로 3가에 임시 전도관을 짓고 예배를 본지도 우리의 기억에 새롭건만 박장로님의 은혜 충만한 설교를 듣고 또 들으려고 낮 예배는 물론 밤 예배까지 멀고 가까운 거리를 막론하고 서울원효로 전도관과 인천전도관에 쇄도하는 군중을 볼 […]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3)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3)

얼마 안가서 장년만 2천여명으로

몇 십명으로 시작한 원효로 임시 전도관, 얼마 안가서 장년만 2천여명으로 1955년 12월에 개관된 원효로 임시 전도관의 예배 시간은 새벽 예배가 매일 새벽 4시 30분부터, 수요일예배가 오후 7시부터, 주일예배는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처음에 몇 십명으로 시작된 원효로 전도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년만 2천여명이 모이는 큰 전도관으로 발전하여 임시전도관은 입추의 여지가 없게되었다. 예배 시간에는 주일 학교 학생들부터 […]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2)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2)

원효로에 임시 '서울 전도관' 건축

공장 기도실에 모이기 시작한 은혜받은 사람들, 원효로에 임시 ‘서울 전도관’ 건축 목사들의 음해로 흩어졌던 양떼들중 몇 사람들이 1955년 말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3가 52번지 박태선 장로님께서 경영하시던 대한정밀기계공업사 기도실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고 이 소문이 퍼져나가자 곧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왔다. 천막집회에서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애타게 박태선 장로님의 소재를 수소문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1)

‘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1)

그래도 6개월을 기다리신 하나님

목사들의 ‘전도관은 이단’ 설교로 흩어진 양떼, 그래도 6개월을 기다리신 하나님 1955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슬성신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남산집회를 비롯한 천막집회에서 연인원 수백만 명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기성교회 목사 2,000여 명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이슬성신을 증거하였다. 그러나 그해 7월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회의 기세에 경악한 한국기독교연합회에서는 이 운동을 이단이라고 규정을 짓게 되고 이를 […]

목사들의 배반(4)

목사들의 배반(4)

끝내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했다.

신앙의 혁명기에 적응하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 끝내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했다. 1955년은 이 땅에 이슬성신의 역사가 시작되어 신앙의 혁명적 전환기를  맞이한 해였다. 그러나 당시 종교계의 지도자들이었던 목사들은 종내 이 신앙의 혁명에 적응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원하여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안수 안찰로 은혜를 부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그들이 받은 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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