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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집회 방해 난동사건(4. 끝)

전주집회 방해 난동사건(4. 끝)

폭력 난동의 주동자 회개하고 돌아와 전주집회 방해의 배후를 폭로

1956년 6월 12일 고성모 목사, 김지세 목사 등의 진두 지휘하에 하나님의 전주집회를 방해하는 폭력난동을 일으켰던 청년들의 우두머리는 당시 전북기독학생연합회 부회장이던 정영곤이었다. 목사들의 사주를 받아 폭력 난동에 앞장섰던 그는 나중에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였다. 그는 자신이 주도한 집회방해 난동장면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고백하였다.“박 장로님께서 전주에 오신 6월12일 집회방해를 위해 ‘출정’하기전 밤 […]

전주집회 방해 난동사건(3)

전주집회 방해 난동사건(3)

집회 방해 폭력난동 성공 못하자 적반하장 ‘비방 성명서’를 발표

하나님의 천막집회를 방해하는 폭도들의 격렬한 난동이 한동안 계속된 끝에 드디어 수십 명의 경찰이 출동하여 난동자들을 해산시키고 주모자들을 연행하면서 사태는 수습되었다. 앰프장치를 지키던 박정일 집사는 머리로 등으로 가슴으로 수 없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고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전기불이 꺼지고 녹음 마이크가 땅에 쓰러질 때까지 그가 관리하던 녹음기는 계속 돌아가 이날 밤의 난동을 샅샅이 기록하고 있었다. […]

전주집회 방해 난동사건(2)

전주집회 방해 난동사건(2)

고성모 목사의 “집어치워라” 공격명령에 수백 난동자들은 강단으로 돌진

전주 동부교회 고성모 목사 지휘하의 수백 명 폭도들은 하나님의 천막 집회장을 쑥밭으로 만들려고 살기등등하게 집회장에 도착하였으나 첫날은 박 장로님이 서시지 않는 것을 알고 그냥 돌아갔다. 그들은 다음 날 결전의 채비를 하고 다시 집회장으로 몰려왔다. 1956년 6월 12일 저녁이었다. “드디어 박 장로님이 등단하여 힘 있게 설교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설교 말씀 중에 ‘기성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

전주집회 방해 난동사건(1)

전주집회 방해 난동사건(1)

하나님의 천막집회 전주개최 못하도록 범교파적으로 집회방해 음모 꾸며

1955년 시작된 하나님의 천막집회에서 놀라운 이슬성신의 은혜를 목격한 기성교회 목사들은 이 은혜가 전무후무한 것이요, 이 은혜를 내리는 존재가 단순한 ‘불의 사자’가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는 대신 오히려 이단(異端) 시비를 걸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이 원효로 구 제단으로 밀려오던 1956년 하나님께서는 불철주야로 전국을 순회하시며 집회를 인도하셨다. 이때 전주에서는 […]

이만 제단(10)  특전대⑤.끝

이만 제단(10) 특전대⑤.끝

특전대 전도정신 오늘날에 되살려야

서울중앙전도관의 특전대는 밴드부, 판매부, 전도부, 영사부로 편성되어 경인지역과 지방 순회 전도 활동을 펴고 있었다. 당시의 특전대 소속 전도부는 주로 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서울 명문 고등학교 재학생들이 대부분으로 6·25 전쟁을 치른 후여서 나이가 10대에서 20대 후반까지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 들이었다. 이들은 특전대 전용버스로 이동하면서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버스 옆에는 신앙신보의 신문 명칭이 쓰여 있었다. 이 버스가 […]

이만 제단(9) 특전대④

이만 제단(9) 특전대④

서울을 비롯해 전국 지방 전도관에도 조직돼

특전대는 서울과 지방에서 기성교회 목사들과 진리토론을 하며 그들의 코를 눌러주고 하나님의 순회일정에 맞추어 노방전도와 영화상영을 하였을 뿐 아니라 교회 안내 일도 도맡아서 하였다. 이만제단에서 처음 조직되었던 특전대는 각 지방 전도관에도 모두 조직되어 체계적인 전도활동에 매진하였다. “그때 이만 제단에 가려면 영등포에서 전차를 타고 노량진까지 가서 한강의 고무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고무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

이만 제단(8) 특전대③

이만 제단(8) 특전대③

나팔불고 노방전도하며 감람나무를 증거해

특전대의 또 다른 전도 활동은 하나님의 지방 순회에 앞서 순회 예정 도시에 가서 밴드를 불고 북을 치며 노방 전도를 하고 밤에는 영사기를 돌려 하나님과 전도관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특전대의 노방전도와 전도영화 상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신기한 광경을 지켜보았으며 그 효과는 매우 컸다. 그러나 당시의 영사기에는 녹음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영화를 상영할 때는 화면을 […]

이만 제단(7) 특전대②

이만 제단(7) 특전대②

한경직 목사에게 성경 토론 신청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하다가 매를 맞고 핍박을 받을수록 특전대의 사기는 올라갔다. 노량진 징로교회에서 심각한 폭행을 당하였지만 특전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다음날 수십명이 영락교회로 한경직 목사를 찾아갔다. 한경직 목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여 2천 여명 은혜 받은 목사들이 하루아침에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전도관 특전대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한경직 목사는 어디로 피해 버리고 한경직목사를 만나지 못한 […]

이만 제단(6) 특전대①

이만 제단(6) 특전대①

젊은이들‘특별전도대’를 조직

서울중앙전도관이 준공된 후 청년들을 중심으로 특별전도대가 조직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였다. 처음에는 비진리(非眞理)를 무너뜨리는 ‘특공대’라 하였으나 그 명칭이 너무 공격적이라 하여 특별전도대, 줄여서 특전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무튼 특전대는 이 땅에 감람나무 나타나셨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조직이 되었다. 1955년 천막집회 때 이슬성신을 부어주시기만 할 때는 그것이 무슨 은혜인지 알지는 못하고 모두들 기뻐서 날뛰었으나 1956년 구제단을 거쳐 1957년 […]

이만 제단(5) 언론의 보도

이만 제단(5) 언론의 보도

성조지에서 서울중앙전도관의 위용을 소개

서울중앙전도관 신축 예배에서 하나님의 안수하심으로 제1회 장로 장립식이 있었음은 기보한 바 있거니와 당시 장로 장립을 받은 사람들의 면면을 계속하여 살펴보고 몇몇 언론의 보도도 보기로 한다. 장병림 교수(1918~ 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장모의 권유로 제단에 나오게 되었는데 새벽제단도 열심히 출석했으며 안수와 안찰을 받고 향취와 각종 은혜 체험을 하였다. 제단에서는 항상 온유한 태도와 밝은 미소로 주위 사람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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