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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소신앙촌(14)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⑪

덕소신앙촌(14)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⑪

신앙촌의 15년은 사회의 1세기

1970년 주간조선 박광리 기자의 보도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1억 원짜리 자가 발전기 4대를 갖춘 시온철강, 한일물산, 시온합섬의 산하엔 30여 개의 공장이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은 무려 80여종. 술과 무기만 빼놓고는 거의 모두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들 시온(Zion) 상표가 붙은 신앙촌 제품은 품질 좋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신앙촌 제품이 1백만 신도를 제외한 일반 가정으로 파고들어 […]

덕소신앙촌(13)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⑩

덕소신앙촌(13)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⑩

1970년 주간조선, 신앙촌의 생활상 상세하게 소개 - 반공정신 투철, 음악 스포츠 선호

1970년 9월 27일 ‘주간조선’은 덕소신앙촌의 생활상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다. “이 곳 주민들은 모두 박 장로가 인도하는 새벽기도(새벽5시)에 참석하는 것으로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아침식사 후에는 모두가 신앙촌 안에 있는 각자의 일자리에서 8시간의 정상 근무를 하게 되는데 자가용 승용차를 갖고 있는 몇 몇 일반 기업체의 사장들을 제외한 공무원, 회사원, 대학생(신앙촌 안에 대학은 없다)들은 10여 대의 신앙촌 […]

덕소신앙촌(12)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⑨

덕소신앙촌(12)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⑨

신앙촌 자체 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의 전기로

1970년 9월 27일자 주간지 ‘주간조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옥고에서 자유의 몸이 된 박 장로는 곧이어 보다 근대적인 규모와 문화 시설을 갖춘 새로운 신앙촌 건설에 착수했다. 경기도 양주군 덕소리에 50만 평의 땅을 매입, 제2의 신앙촌 건설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실로 그가 출감한지 한 달 뒤의 일이다. 특히 제철공업은 그가 평생에 이뤄보려는 사업 중의 하나였다. 그 후 […]

덕소신앙촌(11)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⑧

덕소신앙촌(11)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⑧

교세가 나날이 발전하자 기성교계가 총동원해 신앙촌에 큰 시련을 안겨줬다

1970년 주간조선의 신앙촌에 대한 보도는 계속된다. “한때 기독교 기성교단들은 박 장로를 이단자로 몰았으나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초교파적인 신앙운동을 이끌었으며  국민자주경제의 슬로건을 내걸고 신앙촌을 건설해 왔다. 이제 그는 시온경제권의 총수로서 그리고 백만 신도를 거느린 거물급 종교 지도자로서 성장했다.” 주간조선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단순한 부흥사가 아니라 성경에 예언돼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박태선 장로는 지금으로부터 […]

덕소신앙촌(10)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⑦

덕소신앙촌(10)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⑦

'산진수회의 명승지에 시온경제권' -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 앞 다투어 덕소신앙촌 보도

1963년 5월 7일자 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한강 둔덕의 20만 평 터전에 차려놓은 「제2신앙촌」은 착공 10개월 만에 벌써 서울의 위성도시처럼 그 규모가 틀이 잡혀졌다.   작년 7월 박 장로가 ‘자유율법을 지키기 위한 두번째 울타리’로 세웠다는 이곳은 이제 소사의 ‘제1신앙촌’을 능가하는 ‘시온경제권’을 이루고 있다.   호화선박도 건조   1만 평의 생필품 공장지대, 2만 […]

덕소신앙촌(9)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⑥

덕소신앙촌(9)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⑥

조선일보, 일본 경제신문 등 잇따라 보도 '한강변에 대규모 공업단지'

한편 소사신앙촌에 이어 덕소신앙촌이 더욱 현대화된 규모로 건설되어 아름다운 주택 지대와 의류, 식품 등 품질 좋은 생활 필수품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기계 공장, 스레트 공장이 가동되고 철강 공장까지 건설되자 국내외 언론들은 앞 다투어 신앙촌을 취재하고 다시 한 번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서울과 인천 중간에 있는 소사에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신앙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들의 생활 기반은 […]

덕소신앙촌(8)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⑤

덕소신앙촌(8)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⑤

포스코 설립 6년전에 강조하신 철강산업의 중요성 - 국가 경쟁력의 근간은 철(鐵)이다.

신앙촌을 방문한 학계, 경제계, 언론인 등 각계 각층의 저명 인사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신앙촌의 경제활동의 근본 정신은 단순히 신앙촌 사람들의 생계나 천부교의 전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는 더 깊은 곳에 있었다.   일찍이 이 나라와 민족의 빈곤에 가슴아파 하시면서 우리도 잘살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와 간판주의를 청산하고 교육제도를 개혁하여 차세대를 위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

덕소신앙촌(7)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④

덕소신앙촌(7)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④

'우리는 우리 힘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 - 신앙촌 경제활동의 기본정신 밝혀

신앙촌 건설 초기에 많은 사람들은 신앙촌에서의 경제활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데 대하여 매우 궁금하게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신앙촌에 들어가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가? 일도 않고 살게 되는 것인가?”하고 질문하신 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일하여 먹을 것을 만들고 입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 곡식을 심고 물건을 만들어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 생산은 하지 않고 외국의 원조만 […]

덕소신앙촌(6)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③

덕소신앙촌(6)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③

법학자 신동욱 교수의 덕소신앙촌 방문기 '신앙촌은 어떤 위대한 정신의 소산'

신앙촌의 생산활동에 대하여 사회학자 변시민 교수는 “비단 가난을 극복한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신앙을 행동화 하는 것이므로 타 종교보다 진일보한 것이며 신앙운동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법학자 신동욱 교수는 “덕소신앙촌을 보니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디다. 어떠한 위대한 정신의 소산이더군요.… 내가 외국을 둘러보고 좋다고 느껴 우리도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생활양식이 신앙촌에 와 보았더니 […]

덕소신앙촌(5)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②

덕소신앙촌(5)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②

각계 원로들, '우리도 잘사는 나라 만들려면 신앙촌같은 정신개혁 이루어야'

1960년대부터 신앙촌 제품이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신앙촌의 생산활동에 대하여 종교인들이 왜 경제활동을 하는가 하고 질시와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각계의 지성들은 신앙인들의 경제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과 달리 1960년대만 해도 기업들에게서 품질관리의 인식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때였는데 신앙촌 제품은 우리나라 최초로 품질관리에 의하여 생산된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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