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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2) 원주집회-‘원주’市 이야기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2) 원주집회-‘원주’市 이야기

1955년에 市로 승격한 원주, 1군사령부 주둔으로 성장

지금의 도시 규모를 생각하면 ‘원주는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닌데’ 하는 생각에 강원도 원주에서 집회를 하셨다는 사실이 조금은 뜻밖이었다.   그러나 원주라는 도시의 특성을 이해하고 나면 원주는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다.   예로부터 전쟁, 군대와 깊은 관련을 맺어온 원주시는 6·25가 터지자 군사 요충지였던 관계로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시가지가 거의 잿더미로 변하는 비운을 맞는다.   1953년 말에는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1) 서울 제2운동장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1) 서울 제2운동장집회

제2운동장집회(1955.10.25~11.1.)

하나님께서는 부산 초량동 삼일교회 자리에서 일주일간의 집회를 마치시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신다.1955년에 서울에서만 남산집회, 영등포집회, 한강 백사장집회에 이어 네번째 집회인 제2운동장집회를 여신 것이다. 집회가 열렸던 자리를 찾으려는데 집회가 열렸던 제2운동장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집회 참석자들도 참석하긴 했어도 제2운동장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50년이 지난 지금 잘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   자료를 찾다보니 집회기간도 차이가 있었다. 1956년에 발간한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0) 부산초량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0) 부산초량집회

부산초량집회(1955.10.16~10.22.)

대구에서 두 번째 집회를 갖고, 열흘 뒤 부산에서도 두 번째 집회를 갖게 된다.장소는 초량역 앞 삼일교회 자리였다.집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거리 곳곳에 나붙었다.이전에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때 받은 은혜를 그리며 찾아왔고,집회에 대한 이야기만 전해 들은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칠새라 집회장을 찾았다.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에서 또다시 집회를 여셨다.   1955년 10월 12일자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9)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9)

대구집회(1955.9.30.~10.6.)

인천집회(1955.9.16~22.)가 끝나고 1주일 뒤 대구에서 하나님의 집회가 열린다.대구에서는 6월에 1차로 집회가 열렸었는데 9월에 두 번째로 집회가 열리게 된것이다.이번에도 집회 장소는 칠성동 천변 곧 경북대 앞 사장이었다.   지난 6월에 찾은 적이 있던 대구 칠성동 천변, 그 당시 신문광고에서 보이는 경북대 앞 사장을 또 찾아갔다. 집회가 열렸던 기간(9.30~10.6.)인 지난 4일 축복일 예배를 마치고 곧장 대구로 향했다.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8) 인천 동산운동장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8) 인천 동산운동장집회

인천집회(1955.9.16~9.22.)

“8월의 폭서에 잠시 중단되었던 박태선장로의 야외집회가 재개되는 첫 집회로 모인 인천시민 심령 대부흥회는 그간 세간에서 받은 비난과 폐풍을 일소하기 위하여 일체 안찰로서의 치병(治病)을 중지하고 다만 환자와 시선을 마주침으로 약 3백명의 쾌유자가 나타났다.”(신앙신보 1955.9.28.)   1955년 3월말 4월초에 시작한 남산집회를 필두로 하나님의 집회는 전국각지에서 구름같이 사람들을 모으며 서울 영등포집회, 안동집회, 부산공설운동장집회, 대구집회, 용산군인교회집회, 7월 초의 한강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8) 인천의 동산중학교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8) 인천의 동산중학교

1955년에 전국적으로 있었던 하나님의 집회는 넓은 공터에서 천막을 치고 열렸었다. 천막집회 장소는 누구라도 찾아오기 쉽게 널리 알려지고 교통이 편한 곳이었다.   그런데 인천에서만은 학교의 운동장을 빌려서 천막집회를 여셨다. 당시 인천에는 동산중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공터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동산중학교는 일제의 탄압 가운데도 한국인만의 순수한 재원(財源)으로 운영됐던 유일한 3년제 중등학교였다. 1938년에 개교했으며, 아래 사진은 1941년에 신축한 교사이다.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이야기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이야기

한강의 백사장은 1968년에 시작한 ‘한강 개발’ 이전에는 약 100만평에 이르는 넓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1955년에 하나님께서는 집회를 하셨고, 50년대 후반 이곳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유세엔 30만명이 모였고, 국군의 날 낙하산 시범훈련이 벌어지곤 했다.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집회(1955.7.4~7.11)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집회(1955.7.4~7.11)

연인원 60만명 참석, 이슬성신 한없이 내려

“대망(待望)과 주시리(注視裡)에 한강 집회는 열리었다. 국군과 인민군의 대격전지이며 시체가 산적하였던 자리에 천여평의 가설 천막 회장에는 남한 각처에서 모여온 신도와 시민으로 만원이 되어 저녁에는 2만명 이상 2만 5천명이며 철야하는 자도 만여명이었다.”(신앙신보 1956.5.21.) 한강 백사장 집회는 이미 6월 초에 있었던 대구 칠성동 사장 집회(1955.6.6-16.)를 마치면서 예고가 되었었다. “대구집회가 끝나는 날 광고를 들으니 다음 집회가 한강 백사장에서 7월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6) 용산 군인교회 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6) 용산 군인교회 집회

군인교회에서 열렸던 '국군장병 심령부흥대회'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6·25의 노래 시작부이다. 1950년에 발발하여 남북한 인구 60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남기고 전국토의 80%이상을 파괴하였던 6·25 전쟁은 발발 3년 뒤인 1953년 7월에 휴전이 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있다.1955년 6월은 6·25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이다. 1955년 6월 25일에는 6·25 발발 다섯돌을 맞아 국민대회가 폭우를 무릎쓰고 진행되었다고 당시 일간지들은 보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5) 대구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5) 대구집회

'불의 사자 박태선장로님이 대구에 오신다는데 가봤느냐'

1955년 전국에 불길처럼 번졌던 하나님의 천막집회는 6월에 대구집회로 이어졌다. 대구 칠성동 천변 사장 집회(1955.6.9.~6.16.)   집회가 열렸던 1955년에는 신앙신보에 기사가 없고 집회가 열리고 1년 뒤에 그 때를 정리하는 기사(1956.5.21.<협회창립1주년>)에서 대구 칠성동 천변 사장 집회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또 한편 당시 집회를 알리는 영남일보에는 집회 장소에 대하여 경북대앞 사장이라고 광고(1955.6.7.,11.)가 나간다. 사람들의 기억 속엔 때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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