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리스트

1958년 5월 5일 – 신앙촌 중.고교 개교

1958년 5월 5일 – 신앙촌 중.고교 개교

웅크라 일행 신앙촌 건설상 시찰 후 감탄

“신앙촌에서는 입주한 성도들의 자녀교육을 실시코자 부심한 끝에 이미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는 지난 4월 15일에 개교를 보았으나 한편 중고등학교도 설립을 보아 개교식을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1958년 5월 5일자 신앙신보 1면에는 소사신앙촌의 중고등학교의 개교식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개교식 사진과 함께 사설란에도 “신앙촌의 교육에 기대한다-초·중고교 개교에 기함”이란 제목으로 신앙인만이 모여 이룬 사회인 신앙촌 내 초·중고교의 개교 의의를 밝혔다. 또한 사설에서는 “한국 […]

1958년 4월 7일 – 430평 여수전도관 준공 앞둬

1958년 4월 7일 – 430평 여수전도관 준공 앞둬

석조건물로 '전국 굴지의 위용'이라고 보도

1958년 4월, 전국 각지에서 전도관이 속속 건립되어 낙성집회를 연다는 뉴스와 지관 건립과 지역 구역 정비를 통해 보다 효율적인 관리와 전도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전남 여수에 청석으로 만드는 2층 현대식 전도관 신축 소식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건평 430평이나 되는 청석 석조 2층 건물로 착공한지 불과 5개월만인 오는 4월 […]

1957년 1월 15일 – 청주전도관 개관집회

1957년 1월 15일 – 청주전도관 개관집회

서울전도관 천여 명의 임원임명식

1957년 1월 두 번째 주일은 13일이었다. 1957년 1월 15일자에는 그날 영하 17도의 혹한이 몰아쳤고 그런 가운데도 변변한 난방 장치가 없었을 서울 중앙 전도관 이만제단에는 약 만 여명이 넘게 모여 주일 오전 대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넘치는 수의 교우로서 성대한 오전 대예배를 마치고 곧 그에 뒤이어 금년도 새 임원이 발표되고 … 이정길 목사의 사회아래 […]

1967년 12월 11일 – 無知 깨우치는 계몽의 횃불

1967년 12월 11일 – 無知 깨우치는 계몽의 횃불

전국 전도관에 세워진 시온공민학교

“전곡의 시온고등공민학교가 설립, 5개월만에 큼지막한 교사를 신축하고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며 1면 머리기사로 전하고 있다. 전곡전도관에는 하나님께서 순회집회를 가지신 후 고공학교가 세워지자 지방민들의 큰 호응 아래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1,8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교사를 산축하여 12월에 준공을 보아 전도에도 좋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7월 14일 준공하여 구령사업에 성과를 […]

1961년 11월 20일 – 신앙촌 건설 4주년 기념 연주회

1961년 11월 20일 – 신앙촌 건설 4주년 기념 연주회

신앙촌 메리야스 등 동남아에 수출

1961년 11월에 3일에 1957년 11월에 착공한 신앙촌이 건설 4주년을 맞아 특별전도대의 특별 연주회와 신앙촌 건설 상황 총천연색 영화 상영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 총 3부로 진행된 이날의 행사는 그 당시 건설에 수고가 많은 건설대원들을 초청한 가운데 다양한 음악 순서의 음악회를 갖고 특전대장이 “4년전 이날과 영모님을 모시지 못하고 맞는 오늘의 눈물겨운 사실을 기억하며 더욱 분발하자”는 취지의 […]

1961년 10월 16일 – 온 마을이 전도관을 핍박해

1961년 10월 16일 – 온 마을이 전도관을 핍박해

기성교회 전도사는 전향해 오고

전남 해남군 현산면 황산리 소재 현산 전도관에서 시무하던 장 전도사가 ‘전도관을 3년간이나 없애버리려고 별러왔던’ 마을의 최부자(父子)에게 습격을 받았다. 제단 건물을 부수고 전도사를 돌로 쳐 넘어뜨린 후 흉부를 재차 돌로 쳐 절명케 한 것이다. 이에 “동 제단 성도들은 호흡이 끊어진 장 전도사를 부둥켜안고 눈물로 합심 기도를 했던 바 마침내 3시간 30분만에 소생했으며 또한 9일에는 단에 설 […]

1958년 9월 15일 – 이만제단에 수재민 1,700명 수용

1958년 9월 15일 – 이만제단에 수재민 1,700명 수용

1958년 9월 4일부터 6일까지 전국적으로 내린 폭우로 서울 경기 일대는 30년 만의 홍수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한강의 증수로 한강 연변 낮은 지대는 모두 침수되고 서울에서만 약 2천여 세대 7천명의 이재민을 냈다”고 신앙신보는 보도하고 있다. “큰 수해를 받은 곳의 하나인 용산구 이촌동에서는 지난 5일 하오부터 침수되기 시작하여 6일 아침에는 완전히 탁류에 휩쓸리게 되고 폭우 중에 이재민은 인근 […]

1958년 8월 18일 – 기성교파가 합세 폭력 휘둘러

1958년 8월 18일 – 기성교파가 합세 폭력 휘둘러

‘광복 열세돐 우리나라 정부 수립 십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의 기념식이 있었다. “삼천만의 철천지 한인 조국통일과 교계의 분쟁을 단연 종식하고 오직 마지막 역사를 완수시킴으로써 선열의 영전에 보답하겠다는 일념의 결심을 한층 굳게 가진 바 있다”며 광복절을 맞이하는 당시 교계의 반응을 톱뉴스로 전했다. 기성교계는 여전히 전도관의 집회에 방해를 놓았는데 죽산에서는 기성교계 5개파가 합세하여 노방전도하는 노방전도대에 폭행을 가한 또하나의 집회 […]

1958년 7월 21일 – 도지사 등 신앙촌 내방

1958년 7월 21일 – 도지사 등 신앙촌 내방

`외부의 풍문과는 정반대로 이와같이 건설되었음은 경탄 시간이 지나면 모든 사람이 정당한 인식을 갖게 될 것 확실` 신앙촌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각계 각층으로 다양했다. 1958년 7월 10일에는 최헌길 당시 경기도지사가 정 도내무국장과 이 부천경찰서장을 대동하고 신앙촌을 방문하여 하나님과 ‘신앙촌에 대한 의의와 발전’을 주제로 30분간 대화도 나누고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였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최 도지사는 “외부의 풍문과는 […]

1958년 6월 16일 – 소사신앙촌에 오만제단 신축

1958년 6월 16일 – 소사신앙촌에 오만제단 신축

가을부터 공사 시작할 오만제단 부지에서 역사적인 기념예배를 드리다

“이름도 아름다운 노구산(露救山)! 지난 6월 1일 하오 8시부터 이 광활한 대지에서는 일만수천여 명의 성도가 운집한 가운데 역사적인 첫 기념예배가 엄숙히 거행되었다.” 오만제단 기지에서 드린 첫 예배에 대해 기자는 감격에 겨워 보도를 하고 있다. “이 산정에 서면 멀리 서울 이만제단과 인천이 그리고 황해 바다가 보이는 절경의 장관!”이라며 위치를 소개하고 6월 30일부터 그 유명한 노구산 집회가 열리는 […]

<< 1 2 3 4 5 6 7 8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