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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 건설의 신화(19) 시온탁구①-1

신앙촌 건설의 신화(19) 시온탁구①-1

한국탁구사에 불멸의 금자탑 이룩

`1965년 창단후 3연패만 3번 이뤄` 스포츠를 좋아하는 시온인들은 탁구, 농구, 배구 등 모든 운동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특히 ‘탁구 하면 시온’이라 할 정도로 시온탁구는 한국 탁구의 대명사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온이 탁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시온탁구가 마침내 전국을 평정하여 한국 탁구를 대표하게 된 것은 “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하고, 운동을 할 때 상대방과 몸이 과격하게 부딪치는 운동종목은 신앙인들에게 합당치 […]

신앙촌 건설의 신화(19)시온탁구①-2

신앙촌 건설의 신화(19)시온탁구①-2

시온 초 · 중 · 고, 실업탁구 주요 우승년보

`시온 초 · 중 · 고, 실업탁구 주요 우승년보` ◇1967. 6. 제2회 전국 학도 체육대회 남중 단체우승◇1967. 7. 제13회 전국 종별 선수권 대회 남중 단체우승◇1968. 12. 제1회 교육부장관기 전국학생 탁구대회 남 초단체 우승. 남중단체우승◇1969. 5. 제15회 전국 종별 선수권대회 남중 단체우승◇1969. 9. 제2회 교육부 장관기 전국학생 탁구대회 남중 우승 ◇1971. 6. 제17회 전국 종별 선수권대회 […]

신앙촌 건설의 신화(18) 신앙촌 소비조합

신앙촌 건설의 신화(18) 신앙촌 소비조합

시온제품뿐 아니라 이미지를 전파

‘정직과 양심’을 전달, 50년 역사의 긍지 신앙촌 소비조합의 활동은 1957년 건설된 소사신앙촌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 신앙촌에서 시온경제가 가동하기 시작하여 각종 제품이 생산되었고 이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이를 ‘신앙촌 소비조합’이라고 불렀다. 신앙촌 소비조합은 오랜 세월 동안 양심 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소비자들에게 정직과 신용을 쌓아 왔으며,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제품을 통해 ‘정직과 양심’을 전함으로써 […]

신앙촌 건설의 신화(17) 산업박람회

신앙촌 건설의 신화(17) 산업박람회

100만 관람객들로부터 호평받아

`1962년 산업박람회에 ‘시온관’ 짓고 생산품 전시 ` 신앙촌의 건설과 함께 시동한 시온경제는 입주 신도의 생업과 교육시설 그리고 전국적인 교회건축을 위한 전도자금 등 ‘선한 사업’을 위해 활발하게 가동되었다.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당시 시온제품은 우리나라의 생필품 보급과 품질향상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캐러멜이나 카스텔라, 성냥, 수예부의 수이불, 메리야스 등은 지금도 그 명성이 전해질 정도로 선풍적인 히트 상품이 […]

신앙촌 건설의 신화(16) 시온경제의 의미

신앙촌 건설의 신화(16) 시온경제의 의미

새로운 경제모델의 현장이기도

`신앙촌의 경제활동은 주민의 생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모델의 현장이기도` 신앙촌 건설과 동시에 신앙촌에는 학교법인 시온학원 사업부 산하에 70여 개의 공장이 설립되어 운영 되었다. 이러한 생산과 경제 활동은 물론 신앙촌 주민들의 생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생업 이상의 뜻이 담겨 있다. 신앙인들이 합심하여 자립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그 경제적 기반 위에서 더욱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함이었을 뿐만 […]

신앙촌 건설의 신화(15)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③

신앙촌 건설의 신화(15)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③

'뉴스위크' 셔틀러기자 신앙촌 취재하고 "한국에서 살아있는 곳은 이곳뿐" 격찬

‘뉴스위크’ 셔틀러기자 신앙촌 취재하고 “한국에서 살아있는 곳은 이곳뿐” 격찬 1964년 2월3일자 신앙신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통계표를 보면 신앙촌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1월엔 비교적 적고 10월엔 하루에도 수백명이 들이닥쳐 가장 번잡을 이루었다. 기성교계 지도자, 실업인, 언론인, 군인 등 사회각계 각층의 내방인사들은 14도의 언어와 풍습이 부드럽게 조화된 이 ‘믿음의 마을’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오색 꽃이 만발한 전망식 […]

신앙촌 건설의 신화(14)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②

신앙촌 건설의 신화(14)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②

이국 풍경같은 아름다운 도시 건설

“시기하는 사람들의 온갖 모략 속에서도 이국 풍경같은 아름다운 도시 건설” 1962년 5월28일자 신앙신보 보도에 의하면 “요즈음 신앙촌에는 전례 없는 방문객 붐을 이루고 있다. 신앙촌 산업관의 통계에 의하면 1일 평균 3백여명의 방문객들이 연일 쇄도하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외국선교사, 미국인, 일본인, 해외교포들과 신학대학생, 학교 교장단, 군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있다.”라고 하였다. 1958년 7월 10일에는 최헌길 당시 경기도지사 […]

신앙촌 건설의 신화(13)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①

신앙촌 건설의 신화(13)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①

UNKRA 콜터 단장,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길 보여줘"

신앙촌 방문한 UNKRA 콜터 단장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길 보여줘” 경인가도 소사에 일찍이 상상도 못했던 신앙촌이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방문객들이 몰려 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종교인, 교수, 대학생, 사업가, 군인, 공무원, 정치가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었다. 주 유엔대사 임병직씨와 국회의원 윤치영씨가 뉴욕타임스 기자를 대동하고 서울 중앙전도관을 둘러본 후 소사신앙촌을 방문하였다. 1958년 […]

신앙촌 건설의 신화(12) 언론의 신앙촌 보도③

신앙촌 건설의 신화(12) 언론의 신앙촌 보도③

고급 공무원, 대학생들은 서울로 출퇴근 "신앙촌 네거리에는 없는 것이 없어"

고급 공무원, 대학생들은 서울로 출퇴근 “신앙촌 네거리에는 없는 것이 없어” 오소백의 신앙촌 르포는 계속된다. “걸음을 옮겨 큰 네거리로 갔다. 국민학교 어린이와 남녀 중·고교 학생들이 지나간다. 명랑한 표정이고 구김살이 없다. 신앙촌에는 가시철망도 안보이고 집집마다 울타리도 없었다. ‘문화부’라는 곳을 거쳐 직원에게 주택을 구경할 수 있도록 안내를 받았다. 처음에는 가장 좋은 주택을 구경했다. 두 세대가 사는 집도 있고 […]

신앙촌 건설의 신화(11) 언론의 신앙촌 보도②

신앙촌 건설의 신화(11) 언론의 신앙촌 보도②

신앙촌은 이상적 생산도시 틀림없어

“대한민국이 모두 이렇게만 건설된다면… 신앙촌은 이상적 생산도시 틀림없어” 서울중앙전도관을 취재하는 오소백은 설교 말씀을 듣게 된다. 설교 말씀은 당시에 모든 신문이 도배하다시피 신앙촌을 매도하고 중상 모략하는 때에 하신 말씀이다. “박장로가 서서히 단 위에 나타난다. 회색 양복에 흰 넥타이를 맨 중년 신사다. ‘요즘 신문에 박장로가 나왔냐고 신문 파는 애들한테 묻는 것이 유행입니다. 박장로가 안 나왔다면 신문을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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