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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 건설의 신화(17) 산업박람회

신앙촌 건설의 신화(17) 산업박람회

100만 관람객들로부터 호평받아

`1962년 산업박람회에 ‘시온관’ 짓고 생산품 전시 ` 신앙촌의 건설과 함께 시동한 시온경제는 입주 신도의 생업과 교육시설 그리고 전국적인 교회건축을 위한 전도자금 등 ‘선한 사업’을 위해 활발하게 가동되었다.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당시 시온제품은 우리나라의 생필품 보급과 품질향상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캐러멜이나 카스텔라, 성냥, 수예부의 수이불, 메리야스 등은 지금도 그 명성이 전해질 정도로 선풍적인 히트 상품이 […]

신앙촌 건설의 신화(16) 시온경제의 의미

신앙촌 건설의 신화(16) 시온경제의 의미

새로운 경제모델의 현장이기도

`신앙촌의 경제활동은 주민의 생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모델의 현장이기도` 신앙촌 건설과 동시에 신앙촌에는 학교법인 시온학원 사업부 산하에 70여 개의 공장이 설립되어 운영 되었다. 이러한 생산과 경제 활동은 물론 신앙촌 주민들의 생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생업 이상의 뜻이 담겨 있다. 신앙인들이 합심하여 자립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그 경제적 기반 위에서 더욱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함이었을 뿐만 […]

신앙촌 건설의 신화(15)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③

신앙촌 건설의 신화(15)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③

'뉴스위크' 셔틀러기자 신앙촌 취재하고 "한국에서 살아있는 곳은 이곳뿐" 격찬

‘뉴스위크’ 셔틀러기자 신앙촌 취재하고 “한국에서 살아있는 곳은 이곳뿐” 격찬 1964년 2월3일자 신앙신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통계표를 보면 신앙촌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1월엔 비교적 적고 10월엔 하루에도 수백명이 들이닥쳐 가장 번잡을 이루었다. 기성교계 지도자, 실업인, 언론인, 군인 등 사회각계 각층의 내방인사들은 14도의 언어와 풍습이 부드럽게 조화된 이 ‘믿음의 마을’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오색 꽃이 만발한 전망식 […]

신앙촌 건설의 신화(14)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②

신앙촌 건설의 신화(14)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②

이국 풍경같은 아름다운 도시 건설

“시기하는 사람들의 온갖 모략 속에서도 이국 풍경같은 아름다운 도시 건설” 1962년 5월28일자 신앙신보 보도에 의하면 “요즈음 신앙촌에는 전례 없는 방문객 붐을 이루고 있다. 신앙촌 산업관의 통계에 의하면 1일 평균 3백여명의 방문객들이 연일 쇄도하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외국선교사, 미국인, 일본인, 해외교포들과 신학대학생, 학교 교장단, 군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있다.”라고 하였다. 1958년 7월 10일에는 최헌길 당시 경기도지사 […]

신앙촌 건설의 신화(13)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①

신앙촌 건설의 신화(13)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①

UNKRA 콜터 단장,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길 보여줘"

신앙촌 방문한 UNKRA 콜터 단장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길 보여줘” 경인가도 소사에 일찍이 상상도 못했던 신앙촌이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방문객들이 몰려 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종교인, 교수, 대학생, 사업가, 군인, 공무원, 정치가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었다. 주 유엔대사 임병직씨와 국회의원 윤치영씨가 뉴욕타임스 기자를 대동하고 서울 중앙전도관을 둘러본 후 소사신앙촌을 방문하였다. 1958년 […]

신앙촌 건설의 신화(12) 언론의 신앙촌 보도③

신앙촌 건설의 신화(12) 언론의 신앙촌 보도③

고급 공무원, 대학생들은 서울로 출퇴근 "신앙촌 네거리에는 없는 것이 없어"

고급 공무원, 대학생들은 서울로 출퇴근 “신앙촌 네거리에는 없는 것이 없어” 오소백의 신앙촌 르포는 계속된다. “걸음을 옮겨 큰 네거리로 갔다. 국민학교 어린이와 남녀 중·고교 학생들이 지나간다. 명랑한 표정이고 구김살이 없다. 신앙촌에는 가시철망도 안보이고 집집마다 울타리도 없었다. ‘문화부’라는 곳을 거쳐 직원에게 주택을 구경할 수 있도록 안내를 받았다. 처음에는 가장 좋은 주택을 구경했다. 두 세대가 사는 집도 있고 […]

신앙촌 건설의 신화(11) 언론의 신앙촌 보도②

신앙촌 건설의 신화(11) 언론의 신앙촌 보도②

신앙촌은 이상적 생산도시 틀림없어

“대한민국이 모두 이렇게만 건설된다면… 신앙촌은 이상적 생산도시 틀림없어” 서울중앙전도관을 취재하는 오소백은 설교 말씀을 듣게 된다. 설교 말씀은 당시에 모든 신문이 도배하다시피 신앙촌을 매도하고 중상 모략하는 때에 하신 말씀이다. “박장로가 서서히 단 위에 나타난다. 회색 양복에 흰 넥타이를 맨 중년 신사다. ‘요즘 신문에 박장로가 나왔냐고 신문 파는 애들한테 묻는 것이 유행입니다. 박장로가 안 나왔다면 신문을 안 […]

신앙촌 건설의 신화(10) 언론의 신앙촌 보도①

신앙촌 건설의 신화(10) 언론의 신앙촌 보도①

신중하겠다면서 편견 못 버려

“피뢰침은 왜 달았나?” 엉뚱한 시비 벌이고 신중하겠다면서 편견 못 버려 하나님과 신앙촌에 대한 언론의 왜곡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던 1958년, 『신태양』이라는 월간지 11월 호에 오소백(83) 기자의 ‘신앙촌 르포’가 실려 있다. 오소백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 한국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의 사회부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기자였다. 그러나 그는 김경래, 정을병 등과 함께 신앙촌에 대한 악의적 기사를 많이 쓴 사람으로 […]

신앙촌 건설의 신화(9) 만나가 내리는 땅③

신앙촌 건설의 신화(9) 만나가 내리는 땅③

죄 씻음과 마음의 성결함을 얻어

1957년 12월 16일자 신앙신보에는 신앙촌과 신앙생활에 관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게재되어 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전에는 희미하고 막막하고 답답한 가운데서 살면서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이 무엇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은혜를 받아 좀 알게 되고 좀 이루어져서 받은 것이 있게 되니 이제는 희미하지 않고 확실하며 앞길이 환하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신앙촌 건설의 신화(8) 만나가 내리는 땅②

신앙촌 건설의 신화(8) 만나가 내리는 땅②

마음으로도 죄 안지으려 노력

`자유율법을 지키는 아름다운 땅   마음으로도 죄 안지으려 노력` 소사신앙촌이 건설된 범박리 일대는 원래 척박한 땅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신앙촌이 건설되자 그 땅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땅이 되었다. 1958년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정문 밖에 배추를 심으라.” 하셔서 사람들이 나가 살펴보니, 완전히 자갈밭이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심나?’ 하고 당혹스러웠지만, ‘심으라 하셨으니 심자’ 하고 배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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