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이 은혜입은 천막집회 한강집회편(3)

"20세기의 신비! 기도만으로 불구자를 완치" 신태양 지
발행일 발행호수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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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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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철 승사(87,덕소신앙촌)는 부산 공설운동장 집회에서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던 중 한강 모래사장에서 하나님의 대 부흥 집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1955년 7월경에 한강 모래사장에서 하나님 대 부흥집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부산 집회보다 훨씬 큰 규모에 놀랐습니다. 그때의 인구 비례로 보아 모인 군중과 천막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수만 명이나 되는 군중 앞에서 하나님께서 강대상에 우뚝 서시어 팔을 벌리고 쉭! 쉭! 축복하시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으며 이 민족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하시며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는지 그 당시 사람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축복하시는 모습 잊지 못해

집회에 참석한 조 승사는 하나님 머리 위에 둘린 기이한 광채와 이슬성신이 내리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저는 정신을 놓고 서 있다가 하나님 모습을 바라보니 강단에 서신 하나님의 머리 위로 해 같은 광채가 비추다가 조금 후엔 이슬 같은 안개가 하나님 주위에서부터 퍼져 나오며 온 천막을 뒤덮어 하나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회개하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천국 간다는 말씀만 들렸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로, 그 뿌연 안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감람나무 하나님께서 내리신 이슬 같은 성신이었습니다. 그 성신이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을 감동시켜 기쁨으로 하나님을 따르게 했던 것입니다.

그 후 기성 교회 총회에서는 하나님을 이단이라고 선포하였기 때문에 참 은혜를 받은 교인들만 원효로 구 제단(舊 祭壇)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도 아내와 함께 원효로 구 제단에 다녔는데, 어느 새벽 예배에 하나님께서 나오셔서 찬송가 95장을 장시간 인도하셨습니다. “주 하나님 너희를 찾으시는데 왜 의혹을 하면서 오지 않나. 온 세상 죄 담당한 하나님은 죄 많은 자 불러서 구속하네” 이 찬송을 계속 부르시면서 하나님의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들도 그 간구 하시는 애절한 모습에, 흘리시는 눈물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덩달아 울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당시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으며 집에 와서도 하나님 모습이 생각나 찬송가 95장을 부르며 밤을 지새우곤 하였습니다.”

후에 논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성교회 목사들이 배신하고 은혜받은 교인들까지 가로막자 그래도 은혜를 맛보았으니 돌아오기를 눈물로 호소하시며 6개월을 기다리셨던 것이다.

이슬 같은 은혜가 퍼져 온 천막을 뒤덮어
“회개하고 죄 짓지 말라”는 말씀만 들려

선우혜국 승사(88,기장신앙촌)는 6. 25 동란후 황폐한 심신에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을가 고민하다가 하나님을 잘 믿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부흥회가 있다 하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그는 나운몽 장로의 용문산에도 가 보았으나 실망만 하고 말았다.

“제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끔 된 것은 마음에 기쁨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잘 믿어서 마음의 기쁨을 얻고자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고부터 저는 부흥 집회가 열린다 하면 어느 곳이든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하던 기쁨의 은혜 받아

그런데 제 자신이 기쁨을 원한다고 하여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운몽 장로의 용문산 집회에 갔을 때, 신을 받았다는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방언을 한다고 야단이었는데, 저는 그런 모습이 부럽기는커녕 오히려 추하게 느껴지며 더 이상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이곳은 내가 찾는 곳이 아니다’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여러 부흥 집회에 참석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한강 집회에 참석하여 병자들이 일어나는 기사와 이적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한강 집회에서 그토록 원하던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강 모래사장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 집회가 열린다고 하여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55년 7월경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는데, 집회가 열리는 동안 제 눈앞에서는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벙어리가 말문이 트이고, 소경이 눈을 뜨며, 들것에 실려 왔었던 병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등 그동안 여러 번 부흥 집회를 다녔어도 이런 일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병자가 일어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죄를 회개하여 빠져나가면 성신이 담긴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제 가슴속에 절실히 와 닿아, 평생 동안 기성 교회에 다녔어도 죄에 대한 것도 모르고 눈물이 메말라 있었던 제가 하나님을 뵙고는 지극히 작은 자가 되어 죄 덩이인 제 모습이 느껴지면서 눈물만 흐를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성신이 담길 수 있도록 깨끗하게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20세기의 신비! 본지 독점 특종 기사, 기도만으로 불구자들을 완치시킨다는 장로가 출현!”

1955년 당시 신태양(新太陽)이라는 월간지는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보도하였다. 신태양이 하나님의 천막 집회를 보도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HLKA의 방송 보도로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의 소문이 온 천하에 널리 퍼진 후 신태양사에서는 다음날 취재부 기자에게 그 진상 파악을 지시하였고 즉시 활동을 개시한 신태양 김 기자는 ‘각 방면으로 그 진상을 조사한 결과 전연 허언(虛言)이 아님’을 보고하게 된다. 이에 신태양사에서는 본격적인 기획 취재를 준비하고 기자와 사진기자 각 1명씩을 파견하였다.

취재 지시를 받은 이들은 창신동 장로교회 등에서 신도들로부터 기사와 이적에 대한 예비 지식을 얻은 후 부산에서 부흥회를 개최하고 있다는 소식에 급거 부산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집회는 끝난 후였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마침내 기사와 이적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도하고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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