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윤 전직 관장 편 ⑥ 얼굴이 흙빛이 된 사형수들을 위로하신 하나님

얼굴이 흙빛이 된 사형수들을 위로하신 하나님
발행일 발행호수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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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하나님을 사형시키려던 장면 정권은 5.16 군사쿠데타로 쫒겨나고 말았다.

1960년 12월 10일 동아일보 사건이 터졌습니다. 천부교의 축복이 가짜라는 허위 기사의 정정요구에 동아일보사가 응하지 않자 분노한 시온 대학생학우회 소속 학생들과 교인들이 동아일보사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다수의 학생들과 일반 교인들이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두려움 없이 옥고를 치르고 나왔습니다.
1961년 1월 27일 다시 하나님께서 2차 옥고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자유당 때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민주당 정권은 다시금 우리 전도관을 핍박하여 우리는 혹독한 시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와 절대로 핍박 않겠다 맹세한
장면 총리 대주교 강압에 하나님을 투옥해

저는 다시 오만제단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많은 식구들은 눈물과 괴로움으로 예배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대책위원들은 여러 명의 변호사를 선임하였습니다. 변호사들은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일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들이 하나님께 면회 갔을 때 “저희들은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곧 사형이 구형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웃으시면서 “수고들 하셨습니다”하시며 오히려 변호사들을 위로 하시니 변호사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내일이면 종교인 1명 사형 구형 한답니다` 하는 그날에
난데없는 요란한 총성이 울려 5.16 군사혁명 일어나

1961년 5월 16일 쿠데타가 일어나 장면 정권은 무너졌습니다. 이 때 자유당 시절 내무부 장관이었던 최인규와 정치 깡패 이정재, 유지광 등이 재판을 받았는데 최인규는 기성교회 집사 직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사형 판결을 받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였었는데 하나님께 구원의 말씀을 듣고 얼굴이 환하게 되어 죽음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옥중에서 같이 이발을 하는 짧은 시간에 그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해 주셨다고 합니다. 자유당때 자신을 핍박했던 원수였지만 마지막 가는 순간을 위로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형 판결을 받고 수감돼 있던 유지광 ‘무풍지대’에
하나님 만난 인상기를 기록 `무언지 달랐던 분`

또 같이 수감된 유지광이라는 사람도 자유당 시절 이정재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폭력조직에서 이기붕과 박마리아의 사주를 받아 폭력을 휘두르다가 구속되어 사형 판결을 받은 사형수였습니다.
그는 나중에 감형되어 출옥한 후, ‘무풍지대’라는 자서전에 그가 하나님과 나눈 대화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종종 유지광에게 “유 선생! 절대 절망은 하지 마십시오. 내가 관상은 잘 볼 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유 선생은 죽을 분이 아닙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진심이건 아니건 날 위로하느라고 애를 쓰는 그의 모습을 대할 때면 나는 그렇게 마음이 평온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자꾸 대하다 보니 역시 뭔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라고 유지광은 책에 기록했습니다. 사형
구형을 받은 사람들은 전전긍긍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려고 애쓰시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이 세상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한 일 없는 저에게 수고했다 칭찬해 주심에
너무도 황송한 마음 서대문 제단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려

5·16 때 미8군사령관 매그르더 장군은 1군 사령관 이한림 장군한테 혁명을 진압할 것을 권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5·16 군사 쿠데타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5·16 혁명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성사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전말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5·16 후 하나님께서는 1962년 1월 10일 출감하셨습니다. 출감하신 후 일주일만에 저를 부르셔서 자택에 가서 뵙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께서 사과와 차가 담긴 쟁반을 들고 나오시면서 “전도사님 어서 오세요” 하시면서 반겨 주셨습니다. 식구들은 저를 관장이라 불렀지만 사모님께서는 언제나 저를 전도사님이라 부르셨는데 참 그 말씀이 저에게는 언제나 정감을 주는 고마운 말씀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했어. 박관장” 하시면서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면서 “이 오만제단에서 계속 나를 도와 단에 서는 것이 어떨까?” 하시면서 제 의중을 떠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서대문제단으로 가게 해 수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확고히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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